초여름 더위가 대단하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교실 안은 땡볕 열기로 찜통이다. 요즘 들어 더욱 심해진 기상이변 때문인지 이반 저반에서 덥다고 난리들이다. 어떤 아이는 아예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수업을 들으면서도 연신 에어컨을 켜달라고 생떼를 쓴다. 마지못해 에어컨을 틀어주지만 영 에어컨바람이 달갑지가 않다.
수업을 하면서 에어컨 바람을 쐬다보면 머리도 아프고 무엇보다 에어컨소음 때문에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시간만 수업하고 나면 목은 이내 쉬어버리고 몸은 파김치가 되어버린다.
더위를 참지 못하고 에어컨을 켜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를 바라보며 문득 어린 시절의 부채문화를 생각하게 된다. 하얀 모시적삼에 멋진 쥘부채를 쥐고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던 어른들의 망중한을 생각하다보니 옛날의 추억이 새삼 그리워진다.
부채가 없던 시절에는 큼직한 호박잎이나 오동잎을 가지고 부채처럼 흔들어 더위를 식혔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혹은 냇가에서 천렵하며 더위를 식히는 것이 남자들의 피서법이었다면, 여자들은 깊은 밤 우물가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더위를 식혔다.
부채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부채가 누구에게나 보물처럼 사랑받았다는 기록은 남아있다. 조선시대 가장 대표적인 부채가 단오선이다. 이 부채는 단오 무렵에 만드는 부채로 조선시대 공조에서 만들어 임금께 올렸다. 단오선은 한두 개만 만들어서 임금께 바친 것이 아니라 수만 개를 만들어 임금님께 바쳤다. 임금은 단옷날이 되면 이렇게 진상된 부채를 가까운 신하와 서울의 각 관청에 나누어주며 격려했다. 신하들은 임금으로부터 받은 부채만 보고도 성은이 망극하여 더위는 저절로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높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액면 가치에 비해 그 부가가치가 훨씬 높은 법인데 하물며 임금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니 얼마나 소중하고 보배로웠을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는 계절적 더위 못지 않게 마음의 더위를 심하게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마음의 더위는 무엇이고 그 더위를 식힐 부채는 무엇인가? 아마도 마음의 더위는 세상만사에 시달리는 각종 스트레스일 것이고 마음의 더위를 식힐 부채는 따뜻한 나눔의 정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단옷날 임금님께서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부채 속에는 임금님의 깊은 정이 들어 있었다. 신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누어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더위에 지쳐있는 이웃의 마음을 달래려면 내 마음의 부채 바람이 우선 시원해야 할 것이다.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어야 다른 사람도 기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쁨은 정인 것이다. 정은 마음의 기쁨이고 그 기쁨은 시원한 부채 바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의 더위에 시달리고 있는지, 또 내 마음 속에는 마음의 부채가 있기는 한지, 나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본다. 그러면서 나도 하나의 소중한 부채가 되어 온갖 더위 앞에 좌절하는 학생들을 위해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