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특별기획 중국 속의 한민족사 탐방
◎ 1일째(17일) - 인천국제공항과 대련, 동북공정의 베일
며칠 전 까지만 하여도 물 폭탄 세례를 주었던 장맛비가 그쳤다. 새벽 2시 30분 음력 보름을 지난 약간 기운 달이 조용한 시골을 비추고 소쩍새는 목이 쉬도록 밤을 지새우고 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창원에서 출발하는 인천국제공항행 버스 시간을 맞추려고 집을 나선다. 여행용 가방의 바퀴 소리가 정적을 깬다. 얼마 안 되는 기간이지만 떠난다는 것은 항상 아쉬움과 불안을 가슴 가득 쥐어짜게 한다.
읍내를 벗어난 국도변엔 차량도 뜸하다. 줄을 맞추어 자라는 벼 포기 사이의 물들이 달빛을 반사하고 개구리 소리가 쏟아진다. 남해대교를 건너며 차창을 내린다. 차 안 가득히 갯바람을 담고 숨을 쉬어본다. 떠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진교 톨게이트를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접어든다. 새벽 6시 출발 시각을 맞추려고 속력을 더한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졸음이 쏟아진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셔보지만, 머릿속은 맑아지지 않는다. 이번 연수는 힘든 일정이 될 것이란 사전 공지가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중국 속의 한민족사’ 탐방. 5박 6일간에 걸쳐 펼쳐질 내용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국사 시간과 사극 ‘연개소문, 대조영, 주몽, 태왕사신기’를 통해서 본 것이 전부인데 그 역사의 현장의 직접 찾아 나서고 있다. 근·현대사의 휘말림속에 뼈아픈 흔적이 남은 중국속의 우리역사, 병자호란의 심양과 일제 강점기 시절 안중근 의사의 순국현장인 여순감옥, 분단의 현장이 강 건너에 숨 쉬는 압록강변 단동과 신의주 그리고 책에서만 본 옛 고구려의 도읍지 집안(국내성)과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중국 내에서만 육로로 2만6000㎞ 이상을 이동하는 대장정. 상당한 어려움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자문자답을 한다.
밤이라서 그런지 조금 빨리 창원에 도착한다. 이미 주위는 훤해지고 있다. 주차를 하고 터미널로 가려고 소지품을 챙기려다 아뿔싸 한다. 여권, 손전화, 자동차 열쇠가 든 작은 가방을 차 안에 넣고 문을 잠가 버린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도움의 손길을 찾아보지만, 새벽이라 행인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세워 보험회사의 긴급 출동 서비스로 간신히 곤경에서 벗어난다. 숨을 고려며 택시에 올라 시내의 번화가를 가로지른다. 이른 시간인데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을 보며 의아해하자 택시기사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번화가에서 밤 문화를 즐기고 만끽하는 올빼미족이라 하여 그냥 웃어넘겨 버린다.
버스터미널 안은 한산하다. 작은 흔들림과 함께 고요 속에 파묻힌다. 얼마나 달렸을까? 지나가는 도로표지판에 인천공항이라는 글귀와 함께 서해안의 갯벌 위로 건설된 다리를 달리고 있다. 인천대교이다.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찾아보니 바다 한가운데 난 길을 따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대 건설의 현장을 달리고 있다. 정오쯤 되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2년 전 6학년 아이들과 온 이후 두 번째이다. 깔끔하고 편리한 시설과 서비스에 만족하며 미팅 시간이 남아 있어 공항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인천공항은 2010년 아시아 태평양 최고공항과 미국 Frost & Sullivan 선정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우수 공항이다. 이런 자랑스러움이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오후 3시 출국 절차를 마치고 여권에 출국 도장이 찍힌다. 보안검사를 거쳐 출발 게이트 46번에서 대기한다. 200여 명과 같이 시행되는 이번 연수는 A조는 대한항공으로 B조는 아시아나 항공으로 출발하게 된다. 탑승시간까지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어 지인과 가족에게 문자 메시지와 통화를 한다. 마지막 인사이다. 그리고 손 전화를 자동 로밍으로 맞추고 전원을 끈다.
오후 5시. 동체의 흔들림과 함께 힘찬 제트엔진 소리는 흐린 인천 하늘을 가르며 중국 대련을 향한다. 고도 8000미터에서 바라보는 파란 하늘은 솜이불 같은 흰 구름을 품고 있다. '일망무제'라는 표현이 맞으리라. 시계를 한 시간 거꾸로 돌려 현지시각으로 맞춘다. 드디어 대련 공항에 도착한다. 단체 비자이므로 10명씩 조를 맞추어 입국심사를 받고 중저음 분위기의 공항을 빠져나온다.
저녁식사 장소로 향하는 대련 거리. 플라타너스, 백양나무 가로수가 이채롭다. 이곳 대련시는 요녕성에 속하며 중국에서 40번째로 발해만과 서해를 낀 100년의 역사를 가진 수출입의 90%를 책임지는 중국의 국제무역도시이다. 또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쟁탈전시대 러시아와 일본의 야심에 휩싸인 아픈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하지만 친숙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반지의 영웅인 안정한 선수가 뛰고 있으며 한국인이 4-5만 거주하고 있다.
중국식으로 준비된 저녁을 먹는다. 모든 음식은 원탁의 회전테이블에 있으며 자기가 필요한 양만큼 덜어서 먹는다. 음식의 대부분 기름에 볶고 튀겨서 느끼하다. 하지만 차가 곁들여져 입안과 속을 깔끔하게 해 준다. 주최 측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짐을 푼다. 깔끔한 숙소가 여행의 피로를 씻어준다. 늦은 시간 이번 탐방에 관한 브리핑과 단국대 정영호 석좌교수, 동북아시아역사재단 고광의 연구원,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김도형 선임연구원으로부터 중국 속의 한민족사 탐방의 의의와 동북공정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동북공정!’우리말로는‘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과제라 하는데 이것은 구실일 뿐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터이다. 또한 이것은 남북통일 이후 초래될 수 있는 국경과 영토분쟁에 대비한 역사적 지정학적 논리를 마련하고 앞으로 남북통일이 조선족 사회에 미칠지 모를 영향을 여러모로 분석하여 미리 대처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임을 알게 된다. 중국의 빠른 행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북이 힘을 합쳐 이 문제를 대처해야 할 것인데 이념과 체제 유지를 위한 대립 속에 우리의 고대사는 안개에 싸여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몸은 피곤하지만 아쉬움에 쉬이 잠이 오지 않는 첫날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