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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중국 속의 한민족사 탐방 ⑤



◎ 다섯째날(21일) - 이픈 치욕의 역사가 남은 심양에서

밤새 비가 내렸다. 길림성에서 여섯 번째 도시 백산에서 아침을 맞는다. 그리고 아침 7시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정묘호란의 흔적이 남은 심양을 향해 출발한다.

심양은 중국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중심도시로 만주사변을 비롯한 중국의 치욕적인 역사의 아픔이 서린 도시이다. 만주 벌판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백산에서 심양 가는 길의 풍경. 나지막한 구릉지대엔 옥수수가 지천이다. 6시간 가까이 이동하는 거리라 걱정이 된다. 중간에 휴게소를 몇 군데 들린다. 탐방의 막바지에 다가가면서 모두 지친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심양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다. 이제 내일 심양에서 대련까지 장거리 이동 외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버스 안에서 숨을 고르며 도심의 풍경을 본다. 도로공사, 아파트 보수 등 깔끔하지 않다. 물론 중심가는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중국 5대 도시 중의 하나인 심양, 우리나라에 소개된 성경이 처음 한글로 완역된 곳이며 코리아 타운, 한국주간이 있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심양의 오후 일정이 시작된다.

제일 처음 들린 곳은 9.18 기념관이다. 흔히 우리에게는 만주사변과 만주 괴뢰국, 714부대로 잘 알려진 일제 관동군이 주둔한 대륙침탈 야욕이 극에 이른 곳이다. 일본의 만행은 정말 끔찍하다. 우리만 일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중국사람도 일본을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장작림 폭발사건, 만주철도 폭발사건을 조작하여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국제연맹에서 탈퇴하여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호전적인 일본. 곳곳에 남은 만행의 영상들이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긴 일본도로 목을 잘라 전시하고 작두로 목을 자르는 흑백사진들이 소름 끼치게 한다.

일본의 중국 침략. 1932년 3월 1일 일본은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고 침략을 본격화한다. 이때 우리나라의 국권은 이미 일본에 빼앗겼으며 수많은 민족 항일 지사들은 국내와 이곳 중국 전역에 걸쳐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을 때이다.

만주사변의 도화선이 되었던 심양 외곽의 류조구에 세워진 9.18 기념관으로 간다. 그 입구에는 전 강택민 국가주석이 쓴 ‘物亡九一八(잊지말자 9.18)이라는 글이 큰 돌에 새겨져 치욕스러운 역사를 잊지 말자는 중국인의 의지가 돋보여진다. 힘은 있어야 하며 그 힘은 반드시 강하면서도 의롭게 사용돼야 한다.

날씨가 흐려진다. 바람결에 묻어나는 습기가 금세 비가 올 것 같다. 출발할 때 날씨가 좋아 우비를 모두 짐 속에 넣어 버려 걱정된다.

다음으로 북릉공원으로 간다. 이곳은 심양의 허파라고 한다. 도심에 있으면서도 차량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여유와 휴식, 신선함이 있는 곳이라 한다. 이 북릉공원은 만주족인 누루하치가 청나라를 건국하고 처음으로 도읍을 정한 곳이며, 2대 태종과 그 황후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만주족과 한족의 문화가 융화된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 많으며 심양 고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이다.

입장하여 능의 정문까지는 상당한 거리다. 빠른 걸음으로 능 앞까지 걷는다. 북릉공원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호수도 경주 보문호수와 맞먹을 정도다. 연꽃도 활짝 피었고 가족단위 또는 외국인 관람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능의 정문을 통과한다. 빛바랜 단청이 오랜 세월을 지붕의 십이지상들이 우리와 흡사한 문화라는 것을 느낀다. 능주변의 높은 성곽을 한 바퀴 돈다. 궁궐은 아니지만, 규모에 놀라울 뿐이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관람지 심양 고궁으로 간다. 심양 고궁은 청의 초대황제 누루하치와 2대 태종이 1625년부터 1636년까지 걸쳐 건립한 궁이다. 여기서 1636년은 조선 인조 14년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난 해이다. 면적은 약 6만㎡. 규모는 베이징 자금성의 12분의 1 정도지만 만주족인 북방 기마민족의 흔적이 남은 건축물로 그 화려함은 당대의 영화를 말하는 것 같다.

비가 심하게 내려 실내만 둘러본다. 먼발치에서 올려다본 궁궐의 지붕에는 풀이 자라고 있다. 이 고궁 근처에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와 머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머물던 심양관이 있다 한다. 지금은 아동도서관으로 변하였지만 두 왕자의 한이 얼마나 아팠을까? 어쩜 내리는 이 비는 국력이 쇠약함으로 비애를 맞본 왕자들의 절규가 아닌가 한다.

힘, 정말 필요하다. 그것은 국론이 하나로 모일 때 더 강해지고 외세의 침략 앞에서 더 당당히 항전할 원동력이다.

비 내리는 심양 고궁을 뒤로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짐을 푼다. 약간의 피로를 느끼면서 저녁 만찬에 참가한다. 중국고유악기 연주와 경극이 곁들여진다. 그리고 이 탐방을 이끄는 조선일보 이원희 차장의 컬컬한 목소리가 행사의 의의를 더 진하게 한다.

1987년부터 시작된 ‘선생님을 해외로’ 란 프로그램으로 우리 역사 알기를 통해 2세 교육과 국가관 역사관 형성에 앞장서는 선생님을 위한 장학사업이라 한다. 맞는 말이다. 앞으로 세계화 시대에 국력배양의 밑그림은 교육뿐이다.

지금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산 없이 하루를 생활하기란 어려운 정도로 중국산이 판치고 있다. 물품이 들어오면 반드시 돈은 빠져나가는 법이다. 중국의 일보전진은 우리에겐 분명한 무역전쟁에서 위협적인 존재다.

마지막으로 김태영 논설위원의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면 우리의 장래는 밝아진다는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만찬은 막을 내린다.

시각은 밤 10시를 향하고 있다. 이제 중국에서 마지막 밤이다. 밤을 밝히는 도심 네온의 불빛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외국세력으로부터 꿋꿋하게 서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뭉쳐도 뭐할 것인데 같은 민족 분단되어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금의 현실을 심양에 흩어놓는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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