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하던 올 여름도 드디어 사라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리던 비 때문에 온 집안에 곰팡이가 피고 빨래를 하지 못해 동동거리던 아내의 목소리가 이제 즐거운 목소리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한낮에는 더위가 심하여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지만 한밤중에는 가을의 전령사인 귀뚜라미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엊그제만 해도 모기에게 물릴까 걱정되어 살충제까지 방마다 뿌리고 선풍기를 돌려 빨래를 말렸었는데, 이제는 모기소리도 점점 희미해지고 새벽녘엔 이불을 끌어당길 정도로 가을이 가깝게 다가섰다.
그러고 보니 모기소리와 귀뚜라미는 세월을 연결시켜주는 전령사란 생각이 든다. 모기는 여름이라는 세월과 함께 짝하여 지내다가 시간이 흐르면 가을의 전령사인 귀뚜라미에게 인수인계한다. 자연은 변함 없는 섭리의 규칙을 지키는 만물이어서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찾아올 때마다 계절의 전령사를 보내 세월의 흐름을 미리 예고해주는 친절한 존재인 것이다.
봄에는 약동의 순간을 알리기 위해 차가운 땅에서 개구리가 꿈틀거리고, 여름에는 모기가 앵앵거리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가을이 되면 조물주는 귀뚜라미를 보내 인간들에게 세월의 흐름을 각인시킨다. 겨울을 알리는 전령사는 수없이 많다. 우선 꽃이 시들해지고 낙엽이 지고 바람이 차가워진다.
이처럼 세월을 사계절로 나누어 살펴보면 자연은 항상 경이롭고 신비하다. 만약에 세월이 흘러가 다시 오지 않는다면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우리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인생을 살면서 수십 번 체험하는 세월도 매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바로 인생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 가을로 바뀌는 환절기의 어느 날, 모기와 귀뚜라미가 길 한복판에서 만났다. 이때 모기는 날카로운 창을 들고 있었고 귀뚜라미는 날카로운 톱을 들고 있었다. 이것을 본 모기와 귀뚜라미는 서로 들고 있는 무기가 궁금하여 서로에게 물었다. 먼저 귀뚜라미가 모기에게 물었다.
"야, 날카로운 창은 왜 들고 다니니?"
그러자 모기가 대답했다.
"아, 이 창은 내가 인간의 몸을 찌르려고 가지고 왔지. 참 재미있는 것이 이 창으로 예쁜 여자의 궁둥이를 찔렀더니 그녀가 자기 궁둥이를 '철석' 하고 때리더라구! 너무 우스워서 도망쳤지. 그런데 귀뚜라미 자네는 왜 톱을 들고 왔나?"
모기의 말에 귀뚜라미도 웃으면서
"아! 내 톱 말인가? 나는 이 톱으로 사람의 오장육부를 찌르려고 가져왔지. 특히 노처녀 노총각의 가슴을 찌르기가 참 좋다네."
모기와 귀뚜라미의 일화를 다룬 이야기인데, 결국 자연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마음도 오락가락 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오늘 새벽, 청량한 귀뚜라미 소리를 듣다보니 지긋지긋한 여름이 가고 있는 것이 한편으론 서운하여 몇 글자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