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중국이 미쳤어요!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만리장성! 케이블카를 타고 편리하게 만리장성이 위치해 있는 산의 정상에 올랐다. 오르는 순간 아이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는 이구동성 "미쳤다"는 말뿐이었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렇게 깎아지는 산정에 성벽을 쌓는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엄두가 안 날 일이었다. 오직 진시황이란 절대 권력자만이 생각해내고 실행할 수 있는 대역사였다.
진시황이 처음 시작했고 역대 왕조가 이어 받은 만리장성의 축조 목적은 흉노족과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굳이 이런 성벽이 아니더라도 넘을 수 없는 험준한 산세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성벽을 쌓을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안내인의 말로는 벽돌 하나를 쌓을 때마다 목숨을 잃는 인부가 한 명씩 나올 정도여서 만리무덤이라는 말로도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장성 밑 부분을 파보면 해골이 나온다니 그 역사의 어려움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겠다.
성벽을 쌓은 벽돌은 거의가 남중국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변변한 운송수단이 없었던 당시에 벽돌과 목재 하나를 옮기는데도 5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옮기는 방법도 매우 복잡했다. 예를 들어 벽돌과 목재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우물을 파고 겨울이 되기를 기다린다. 날씨가 추워지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 길바닥에 뿌려 얼음길을 낸 뒤 사람들이 직접 밀거나 끌어서 옮겼다고 하니 그 고초가 얼마나 심했으랴.
나그네는 잠시 감상에 젖어 문득 동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흉노족이 살았다는 땅은 수풀이 이미 우거져 있고, 서쪽을 바라보니 북경의 시내가 황홀하다. 아, 세월은 흘러 진시황의 철옹성 만리장성도 아방궁도 모두가 관광거리가 되었으니 어찌 인생살이가 허무하지 않으리요.
지독한 권력욕 - 죽어서도 황제를 꿈꾸다
9월 7일, 3일차를 맞은 우리 수학여행단은 명나라 초대 황제인 주원장의 넷째 아들이자 세 번째 황제인 영락제의 능묘인 장릉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금 고국의 날씨는 9월 초순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 텐데도 북경의 날씨는 습하고 더웠다. 손수건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흐르는 땀 때문에 도보가 어려웠을 정도였다. 이마와 뺨으로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낸다. '아내 없이는 살아도 에어컨 없이는 못산다.'는 중국 남자들의 너스레가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황제의 능묘는 땅 밑으로 27m 정도를 파서 돌로 각 층을 쌓아 올려 지하 궁전 형태의 무덤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은 후 나무를 심어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입구를 모르면 발굴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현재 13대 황제인 만력제의 '정릉'이 완전히 발굴돼 황금모자 등 일부 유물을 장릉의 능은전에 전시하고 있다.
능은전은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던 목조 건물로 내부 기둥 밑 부분의 직경이 1m가 넘는 녹나무이다. 이렇게 거대한 나무 하나를 북경으로 운반하는 데에만 5년 정도가 걸렸으며 여름에는 강물에 띄워서, 겨울에는 얼음길을 만들어 밀면서 옮겼다고 하니 그 웅장함에 대한 감탄보다 고생한 이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앞섰다.
영락제의 거대한 동상이 있는 능은전 뒤에는 묘비가 있는 명루가 있고 그 뒤로 보이는 산이 능이다. 능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에는 군데군데 도장 모양의 문형이 새겨진 부분이 있는데 외부에서 북경으로 돌을 쉽게 반입할 수 있도록 황제를 위해서 쓸 돌이라는 표시를 한 것이다.
죽은 후에도 그 이름을 만세에 전하고 생시와 똑같은 권력을 누리고자 했던 황제들. 그들의 무덤은 지금 수풀 속에 우거지고 "저게 황제의 무덤이야?"라는 관광객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요. 만세에 이름이 전하고 역사에 불멸하는 것은 웅장하고 화려한 전각과 무덤의 크기가 아니라, 오직 황제 자신이 베푼 선정에 있음을 황제들은 진정 몰랐다는 말인가.
아, 그리운 고국의 산하여 - 다시 KE2852기에 몸을 싣다 -
9월 8일(목). 130명이 체험한 북경의 3박4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기저기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아이들의 한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알찬 여행이었다. 2학년 1반부터 9반까지 130명의 아이들은 하로 똘똘 뭉쳐 북경을 완벽하게 점령했다. 특히 THE PLACE에서 펼쳤던 말뚝박기 놀이는 대륙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마치 거칠 것 없이 질주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는 듯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대륙의 큰 나라를 섭렵했다. 또한 서령이라는 가족이 되어 서로 챙겨주고 걱정해 주면서 무더위 속에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중국 북경여행, 가는 곳마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지만 부럽다기보다는 아기자기한 우리나라가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수학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