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만 가는 그림자. 얇아지는 햇살. 논두렁, 밭 언덕마다 핀 억새는 은빛을 빈 논에 흩어놓는다. 겨울을 초입에 둔 십일월 말. 오리엔티어링대회에 참가하느라 산촌 오지 마을을 찾았다. 대개 이맘쯤 날씨는 비갠 뒷날 바람이 분다. 그날도 예외 없이 한기를 머금은 바람은 옷깃을 파고들며 코끝과 볼을 발갛게 하였다.
남해가 아닌 다른 지역 농촌마을 길. 요즘 둘레길, 올레길 하며 걷는 행사가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럿이 걷는 길보다 고즈넉이 혼자서 걸어보는 길도 운치가 있다. 혼자 걷는 길은 많은 사색의 매듭을 만들고 풀게 한다. 더구나 그 길을 가면서 앞서 간 사람들이 쏟아낸 진주 같은 사연을 다르게 음미해 보는 것도 생활의 한 모서리를 들여다보는 청정재가 된다.
먼지가 풀풀 날렸던 옛날 신작로를 벗어나 마을로 접어드는 길. 인적 드문 길엔 바람만 내닫고 간간이 염소울음 소리만 들린다. 문득 덜거덕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유모차 닮은 보행 보조기에 의지한 할머니께서 힘든 걸음을 놓으며 사람 귀한 동네에 젊은이 본다고 반가워한다. 비워만 가는 우리네 농촌.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의 뿌리는 바로 여기이다. 하지만, 텅 빈 골목과 마당엔 바람 소리에 꼼지락거리는 햇살만 가득하고 갈무리된 고춧단과 깻단, 누런 호박만 햇빛 바라기를 하고 있다.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본다. 낡은 슬레이트집 앞뜰에 검버섯 같은 이끼를 두른 감나무 두어 그루가 지붕보다 더 높이 서 있다. 오랜만에 보는 늙은 감나무이다. 얼어붙은 파란 하늘가에 까치밥을 매단 모습이 정겹다. 누가 말했다. 순순함은 그 자체가 사랑이라고. 문득 일 학년 아이들에게 까치밥이 왜 있을까 하는 질문에 할머니께서 주신 감이 너무 맛이 있어 까치들도 먹으라고 남겨두었다고 하는 기억이 새롭다. 얼마나 깜찍한 상상인지! 거기에 옛 사람들의 자연을 배려하는 넉넉함을 더하니 그 사랑은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러나 까치밥을 보며 군침을 삼킬 아이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 안길을 돌아 산 능선으로 접어드는 길. 작은 산 밭에 자라는 배추와 무들의 싱싱함이 군침을 돌게 한다. 생각 같아선 통째로 무를 뽑아 마른 풀밭에 문질러 한 입 베어 물고 싶다. 그러면 약간의 단맛과 시원함이 그 시절의 추억을 한 바가지 담아 낼 것이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반 시간 가까이 서 있자 오금이 떨리고 이빨이 부딪힌다. 이럴 때 따스한 어묵국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에 잘 찾지도 않던 주전부리가 생각난다. 움직이지 않으면 추워 다시 마을의 다른 쪽을 둘러보기로 언덕배기를 지난다. 마침 경운기를 몰고 오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마을에 과자 파는 가게가 있는지 물어보지만, 고개를 젓는다. 사는 사람이 있어야지! 사려면 면 소재지에 있는 마트에 가야 한다고 한다. 정작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런 질문을 하였는지! 그러나 행인의 물음에 경운기를 세우고 답해주시는 친절이 구수하다.
노란색 짙게 물든 은행나무 한 고개를 더 넘어 산아래 농로로 접어든다. 갈색으로 변한 덤불 사이에 붉은 까치밥이 고개를 내민다. 계단을 이루며 정리된 논들의 가장자리 언덕엔 억새들이 햇볕에 부서지며 회색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아무도 없다. 벼 그루터기에 돋아난 초록 잎사귀들만 빈 들을 채우며 바람과 만나고 있다.
걷는 길! 소설가 김주영은 그 길을 표류하는 선박과 같다고 하였다. 혼자만의 조각배를 타고 기다림과 낡은 기억을 되살리며 고독과 추억을 담금질하면서 혼자로서의 자신을 점검하는 길이다.
깊은 산골에서부터 내리치는 바람은 나무냄새 흙냄새를 싣고 들길을 내닫는다. 느긋함 속에 찾아보는 짧은 겨울 낮시간 농촌길 걷기. 모니터에만 매달려 여유도 없이 지낸 일상들이 저만치 물러나고 긴 바람 소리는 농촌의 여유와 아쉬움을 휘파람으로 파란 하늘에 쏟아낸다.
우리네 농촌은 언제나 길을 보듬고 삭막해진 마음을 보듬어주는 정과 한이 숨을 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