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망운산에서 내려오는 산골바람이 차갑다. 맞바람을 받으며 털수건을 목에 두른 할머니의 손수레에 오꼬시 한 자루가 실려 있다. 아 그래, 설이 얼마 남지 않았지! 할머니의 뒷모습이 힘에 부쳐 보이지만 설날에 찾을 손주와 자식에게 줄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오는 길이라 마음은 가벼워 보인다.
요즘 집들의 마당이나 옥상에는 말리는 생선들이 눈에 자주 띈다. 설을 앞둔 음력 섣달에 미리 제수용 생선을 다듬어 갈무리하는 모습이 남해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설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설은 만남과 반가움, 정이 넘치는 날이다. 문득 어제 남해전통시장 아랫길에 오꼬시 만드는 집을 지나치며 본 광경이 떠오른다. 차례를 기다리는 대야들이 줄을 서 있고 좁은 공간에 구부정한 허리로 옹기종기 앉아 자식자랑,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할머니들 중에는 버스를 타고 먼 곳에서 왔다는 분도 계셨다. 누구 주려고 오꼬시 만드느냐고 했더니 손지도 주고 아들도 주고 남으면 영감하고도 묵제하신다. 정말 정감 나는 모습이었다.
돌이켜 보는 설의 의미. 세월은 지나고 생활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베풀어주는 정과 반가움은 아직도 따스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설이란 말을 들으면 어른 아이 없이 모두 기다림과 반가움이라 할 것이다. 내 어릴 적 설에 대한 큰 기억은 떡방앗간과 이발소이다. 설의 모습이 풍성하게 빚어지는 곳이 떡방앗간이다. 보리밥에 쌀 한 줌 섞어 먹던 시절. 지금까지 아껴 놓은 쌀을 그날만은 듬뿍 들어내어 큰 대야에 담아 씻는다. 하얀 뜨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절로 신이 나며 군침을 다시곤 하였다. 그리고 불린 쌀을 머리에 이고 논두렁 길을 걸어가는 어머니를 따라 방앗간에 가면 앞도 보이지 않는 뽀얀 수증기와 쌀 익는 냄새, 참기름 냄새의 구수함이 바쁜 손길과 말소리에 섞여 잔칫집이 따로 없다.
아직 순서가 되지 않은 동네 어머니들은 바람을 피해 한쪽 모퉁이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 긴 기다림. 어쩌면 짜증도 날 만하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적당한 길이로 가위질 되어 찬물 속으로 들어가고 모두가 도와가며 절편에 참기름을 발라 나란히 놓으며 한 입 얻어먹을 때 그 아련한 맛을 어떻게 알랴. 설을 앞두고 일찍 뽑은 가래떡은 적당히 굳어져 그믐날 밤 이야기꽃을 가져오는 전령사가 된다. 남해는 특이하게 섣달 그믐날 제사를 지낸다. 그믐날 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말에 애써 잠을 쫓는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 그믐날 밤 오 촉짜리 백열등은 초저녁을 지나면 필라멘트만 빨개진 채 빛을 내지 못한다. 집집이 마지막 날이라 곳곳에 불을 밝히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이내 촛불을 밝히고 굳은 가래떡을 썰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썰어내는 떡쌀은 한석봉이 어머니보다 더 가지런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아마 일 년 중 아버지께서 유일하게 어머니의 일을 대신하는 날이 바로 이날이라고 기억된다.
설날이 다가오면 제일 신바람 나는 곳이 마을에 두 군데밖에 없는 이발소였다. 목욕탕 가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집에서 물을 데워 부엌에서 오돌오돌 떨며 씻는다. 그리고 이발소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머리를 다듬는다. 가죽 벨트에 쓱쓱 면도날이 문질러지는 소리를 들으면 이발이 다 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면도로 머릿밑을 마무리하면 조수가 물 조리개로 머리를 감겨 준다. 아이고 머리에 쇠똥 봐라 하며 얼마나 세게 감기는지 눈물을 질끔 거리기도 하였다.
이런 설의 모습도 도시화와 농촌의 고령화로 말미암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의 세대가 지나면 이런 모습은 빛바랜 흑백사진의 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지고 삶의 모습이 생각나면 시장으로 간다. 그곳엔 서민들의 숨결이 녹아있다.
시장을 벗어나 오르는 골목길. 잿빛 겨울 공간 속 가지만 남은 감나무에 까치들의 노랫소리와 날갯짓 소리가 유난히 반가움으로 리듬을 탄다.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어른들이나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손주들도 만남의 반가움으로 어려운 생활사를 감싸주는 날이 설이다.
2012년 임진년이 음력으로 문을 여는 설날. 즐거움과 반가움의 물결 속에 따스함이 묻어나는 정월 초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