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집 거실 풍경. 소파에 앉아 아내와 필자가 손바느질을 한다. 아내는 가죽장갑의 튿어진 곳을 꿰매고 필자는 목도리의 해어진 부분을 감칠질한다. 장갑, 목도리 모두 필자의 것이다.
웬 궁상떨기? 사용하던 물건이 보기 흉하게 되어 더 이상 쓰기 곤란하면 버리고 새로 구입하면 된다. 비용도 얼마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안 된다. 어떻게든 수선하여 더 사용하려 든다. 이게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었나 보다.
장갑 구입 기록을 살펴본다. 몇 년 전 모 백화점에서 2만원을 주고 샀다. 유명상표 제품인데 아마도 겨울이 끝나가는 2월 경에 세일가격으로 산 듯 싶다. 방한용으로, 눈 싸움할 때, 작업할 때 다용도로 사용해서 그런지 해어져 겉표면이 거칠하다. 이 정도면 버리고 새로 구입할 만 하다.
목도리는 누나가 교사 시절 영국에서 공부한 후 선물로 사 온 것이다. 그 때가 1996년이니 16년이나 되었다. 상표도 떨어지려 하고 접힌 부분이 낡아 한 10cm 정도 길게 구멍이 났다. 귀한 물건이어서인지, 정이 들어서인지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겨울이면 애용한다.
수선한 장갑을 끼워보니 그런대로 쓸 만하다. 목도리는 꿰맨 흔적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정도면 몇 해 더 써도 되겠다. 이것을 착용하고 1박2일 남해의 금산과 응봉산을 잘 다녀왔다. 유용하게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안방 옷걸이를 살펴본다. 스카우트 지도자용 붉은색 잠바. 버릴 때도 되었건만 애용하고 있다. 1982년 매원초교 보이스카우트 대장 때 입던 옷이니 정말 오래도 되었다. 지금은 출고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겨울철 등산할 때 유용하게 사용하고 속 털을 떼내면 봄, 가을에도 입을 수 있다.
하늘색 츄리닝, 1989년 오산여중(지금은 매홀중)에 근무할 때 학교에서 전직원에게 사 준 것이다. 그 당시 교장선생님이 이름까지 새겨 주셨다. 집에서 머물 때만 입다보니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기사 요즘 버리는 옷,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뒤떨어져 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만 입다보니 유행과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 얼마 전 가죽장갑을 사러 백화점에 간 일이 있었다. 계절의 끝이라 그런지 남자용은 세일가격으로 2만원, 3만원짜리 두 가지가 있었다. 그런데 바느질 땀을 보니 밖에서 박은 것이다. 쉽게 바느질 한 것이다. 필자의 해어진 장갑은 안에서 바느질하였다. 물건에 수준 차가 나는 것이다. 결국, 이른 봄 세일 때 제대로 된 장갑을 사기로 마음 먹는다.
필자의 함께 한 오래된 물건, 마치 나의 분신 같다. 영혼이 거기에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다만, 아내가 나 모르게 버리면 아쉽지만 '할 수 없다' 체념하고 그냥 잊고 만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제 50대 후반, 궁상떨기를 그만 할 때도 되었다. 나도 헌 것을 버리고 품위 있는 새제품을 사용하고 싶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그에 따른 비용이 수반된다. 그러면 그 전에 나와 함께 했던 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을 쉽게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이런 생각도 해 본다. '궁상 좀 떨면 어떤가? 그 게 바로 나요, 내 개성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