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다 보면 오밀조밀한 소품들이 항상 우리 곁을 따라다닌다. 머리밴드, 머리핀, 휴대전화 전지 등 꼭 필요하면서도 잘 보관이 되지 않아 집안의 이곳저곳에 뒹굴게 된다. 우리 집엔 이런 자그마한 것을 담는 그릇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 비싸지도 크지도 세인의 관심을 끌지도 않는 옹기로 만든 한 되들이 작은 시루다. 이 녀석은 항상 거실 한쪽 한 뼘 높이의 선반에 앉아 그저 자기 할 일만 말없이 하고 있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 현관문을 열자 너덧 조각으로 깨어진 이 녀석이 버려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아내 말인즉슨 청소하다가 선반에서 떨어졌는데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내심 아까운 생각이 들어 강력접착제로 붙여보기로 하였다. 깨어진 조각을 이리 저리 퍼즐 조각처럼 맞춰보니 대강은 들어맞는데 금이 간 사이를 메워 줄 미세한 조각들은 맞추지 못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내는 궁상맞다고 당장 버리라고 하지만 맞춰 붙여 보니 그런대로 원래 모습을 갖추어 다시 제 기능을 주기로 하였다. 접착제가 마르고 나서 옹기 시루를 보니 형태는 보존하고 있지만 그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 그것을 보면서 문득 사람과의 만남에서 보이지 않는 상처를 주고받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수한 만남을 한다. 얕은 만남이든 깊은 만남이든 그것을 되풀이하면서 헤어짐도 역시 반복하게 된다. 사람 사이에서 이런 만남과 헤어짐이 좋은 추억으로 남으면 참 좋을 것인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얼굴을 붉히고 돌아서는 일도 허다하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갈등이라고 한다. 갈등은 소설의 구성에서 꼭 필요하다. 책을 읽다 그 갈등이 해소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맛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은 감정이 개입된 만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끝내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파경을 맞는다. 파경은 부부 사이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어떤 연유로 인해 백년해로의 기약이 깨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만나지 못해 같이 있지 못해 안달이 날 지경인 남녀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파경을 맞아 등을 돌리면 사랑하던 마음은 일순간에 미움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서로의 가슴에 항상 치유되지 않는 아픔으로 따라다닌다. 비단 이런 예 말고도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겪는 만남과 갈등 그리고 헤어짐은 너무 많다. 그 만남의 인연들이 분홍빛으로 점철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갈등의 파편인 금간 흔적이나 사금파리 조각은 날카로워 손이나 발을 다치게 한다. 그 위기를 모면하려면 물리적인 힘으로 가장자리를 다듬으면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난 상처의 조각들은 물리적인 힘으로 치유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좋은 일은 기억 속에 쉽게 잊히지만 아픈 감정은 언제나 멈추지 않는 메아리로 반복된다. 그리고 내가 도움을 받았던 일은 쉽게 잊히지만 내가 도움을 주었던 일은 잘 기억하고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게 우리네 욕심이다.
끄집어내 놓은 소품들을 다시 담으면서 옹기 시루의 안쪽을 본다. 단단히 붙었지만 깨진 흔적들은 선명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아픔의 흔적을 남겼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살아가며 즐거운 만남을 계속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좋은 기억을 남기게 되면 그것은 큰 덕이란 자산으로 돌아온다. 항상 마음속의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저울로 균형을 따져 만남의 도구를 잘 다듬질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현인의 모습이 아닐까?
우주는 광대하고 세상은 넓다. 그 중 인간이 살아야 하는 기간은 점 하나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모두가 존귀한 우리가 상처를 내고 다듬기 전에 상처를 내지 않는 만남을 이루는 게 삶을 아름답게 하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 번 안타깝고 안스러워 깨어진 옹기 시루를 만져본다. 조각끼리 붙여진 가장자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버리기보다 저 깨어진 흔적을 보면서 다듬고 보듬는 마음을 키워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