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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부자인채로 죽는 것은...

익숙하게 들어 본 단어는 아니지만 기부지수(寄附指數)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영국에 본부를 둔 자선원조재단(CAF, Charities Aid Foundation)이 지난해 9월 세계 153개국, 15세 이상 19만5천여 명을 대상으로 기부행태를 조사한 것이다. CAF는 기부금 액수가 아닌 기부 활동에 초점을 맞춰 금전기부, 자원봉사, 낯선 사람 돕기 등 3개 항목의 질문을 통해 기부지수를 종합했다. 3개 항목의 인구 대비 통계를 바탕으로 종합점수를 산정하고 국가별로 순위를 정하는 식이다.

조사 결과 기부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는 호주와 뉴질랜드로 두 국가의 기부지수는 57%. 그 뒤를 이어 캐나다와 아일랜드가 56%로 공동 3위에 올랐고, 스위스와 미국은 55%로 공동 5위를 기록했다. 그 밖에 네덜란드(54%), 영국 및 스리랑카(53%)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반면 한국의 기부지수는 29%로 81위였다고 한다. 일본(22%)은 119위, 중국(14%) 역시 147위로 한국이 아시아 국가들 중에선 기부지수가 높은 편이었지만 만족할 만한 순위도 아니다.

선진국이자 최강대국인 미국의 기부 릴레이 문화를 보면 카네기, 록펠러 등의 영향이 크다. 카네기는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기부를 실천했다. 그리고 클로드 로젠버그는 기부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하였다. 한편 우리가 잘 아는 금융투자 전문가인 워런 버핏은 최소한의 재산만 물려주겠다고 밝혔으나 생전에는 기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즉, 자기 생전에 투자를 잘해서 이익을 극대화해 기금을 만든 다음에 죽은 뒤에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에 로젠버그는 지금 기부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이 장래에 투자로 생기는 수익보다 클 수 있다며 기부를 늦추지 말라고 설득했다. 100만 달러를 투자해 10년 뒤 1억 달러의 수익을 낸다 해도, 그 돈으로 지금 도움 받은 아이들이 성장해 10년 뒤에 낼 사회적 경제적 파급력은 훨씬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워런 버핏은 생각을 바꿔서 늙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현재 시점에서 기부를 하겠다고 했고, 다른 부자들에게도 바로 지금이 기부할 때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로젠버그나 워런 버핏 같은 인물의 말과 행동을 투자나 기부 측면에서 보면, 당장의 투자를 통한 수익창출 보다는 지금의 기부를 통한 사회적 이익이 크다는 매킨지 보고서로도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할 때 기부하고 투자하는 것이 진정한 선행인 것이다.

기부는 이제 단순한 억만금을 희사하는 것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요즘은 교육기부가 새로운 기부문화의 경향으로 대두되고 있다.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적 경험을 통해 창의성과 인성을 갖춘 대한민국의 미래주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러한 교육기부 흐름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기부 전담기관을 지정하고 교육기부 자원 발굴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교육기부 박람회를 열지 않았던가. 늦었지만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어른들 말을 들어보면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이승에서 번 돈은 이승에서 유익하게 써야 한다는 선인(仙人)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죽은 후에 남겨 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회 인재 육성을 위한 기부문화가 널리 퍼져야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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