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이라 했다. 불과 스무날 전만 하여도 비처럼 떨어지는 벚꽃의 향연이 눈을 어지럽혔는데 꽃 진 자리에는 새잎이 돋아나고 산은 연둣빛 초록으로 투명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계절 중 이맘때 봄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새봄의 매력이 남사 예담촌 토담길에서도 무르익고 있다. 예담촌 토담길! 전통 한옥의 고택을 에워싼 기와를 눌러 쓴 토담은 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길을 걷는 일은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아늑한 향수와 휴식을 줄 수 있다.
돌담 사랑! 언제부터인가 자주 걷기 시작하면서 그 수더분한 매력은 볼 때마다 셔터를 누르게 한다. 그중에서 강이나 주변에서 구한 돌로 쌓은 돌담의 매력은 더 진하게 다가온다. 담의 사전적 의미는 집의 둘레나 일정한 공간을 막기 위하여 흙, 돌 따위로 쌓아올린 것으로 나와 있다.
담장의 재료는 대개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하지만, 특히 부나 권세가 있는 사람은 채석장에서 채취한 돌로 쌓기도 하였다. 따라서 지위가 높을수록 담은 높아지고 단단하며 틈새가 없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나고 있다.
내가 쉽게 떠올리는 담은 농가 울타리, 제주도 돌담, 그리고 대중가요인 덕수궁의 돌담길이다. 농가의 울타리는 풀이나 나무로 엮은 것이며 제주도의 돌담은 화산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쌓은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궁궐인 덕수궁의 돌담은 화강암을 사용하여 빈틈이 없게 맞물려 쌓은 담이다. 담이 인류 역사에 있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청동기시대라고 짐작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생활을 하자 서로의 경계가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경계는 싸움을 불러오는 근원으로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긴 토담골목을 걷는다. 기와를 눌러쓴 양반가의 토담은 바람 한 좀 드나들 곳이 없다. 타박타박 발걸음 소리만 메아리로 울려온다. 누가 담장 밖에서 구멍으로 들여다보기나 한다고 틈새마다 흙을 발라 메웠을까?
나는 블록, 벽돌, 화강암 축댓돌로 쌓은 담보다 농촌의 돌담이 너무 정겹다. 내 어린 기억 속의 담은 여러 가지이다. 블록을 쌓고 그 위에 유리 파편을 꽂은 담. 가지가 벌어진 쇠창살을 꽂은 담, 철조망이 쳐진 담……. 블록담은 매끈하여 낙서할 수 있는 좋은 도화지였지만 들키면 집주인에게 혼이 나고 서슬 퍼런 유리파편의 담은 손을 얹으면 다치기 십상이었다. 그런 모습의 담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고쳐 허물고 자연석으로 쌓지만 CCTV를 동원한 무인자동경비시스템에 의해 쳐진 담은 전자의 담 보다 더 끔찍하게 우리 곁에 있다. 사람의 욕망! 그 끝은 어디일까?
지난가을 바래길을 걸으며 남면 유구마을에 돌담으로 둘러쳐진 집을 보았다. 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지만, 그 낮은 담의 틈으로 집안도 훤히 들여다보였다. 저 돌담 사이로 바람과 햇살도 꼼지락거리며 드나들고 웃음소리며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도 드나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많고 많은 담 중에 산 돌, 강 돌, 들 돌로 쌓은 담은 살아가는 눈치와 해학 여유를 만들어 준다. 어릴 적 친구 집에 들어가기 전 제일 먼저 담장 구멍 사이로 집안의 인기척을 살폈다. 혹시 밥이나 먹을 때 들어가면 낭패일까 싶어 상황을 살핀 것이다.
한옥마을에서 돌담의 미학을 찾는다는 것은 염치없고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만 농촌의 정서와 서민의 애환은 돌담에 묻어 있다. 한 줄기 바람을 맞고 누구야 놀자 하는 유년을 떠올리는 신선한 바람을 몰고오는 성찰의 의미가 있다.
담! 우리의 삶에는 보이는 담보다 보이지 않는 담이 더 무섭게 버티고 있다. 생활은 서로의 부딪힘 속에 담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담이 바람 한 줌 드나들 수 없는 궁궐이나 권력가의 담이 아닌 용서와 웃음과 화해가 드나들 수 있는 울타리나 돌담이라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성경에서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였다.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며 굳게 쌓은 화강암 축댓돌 담보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사이가 숭숭 벌어진 돌담을 쌓는다면 더 환한 오월의 봄이 삶에 묻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