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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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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아내는 아까부터 위험하다며 나와는 멀리 떨어진 곳 안전한 곳으로만 다녔다. 나보다 산행을 즐겨하지만 워낙 경사진 절벽에 아까부터 겁을 잔뜩 집어 먹고 몸을 움츠리고 산행을 하는 모습으로 보아 무척 위축이 되어 산행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월류봉 산행을 간절히 원하였던 곳으로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곳이기에 고향 산천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 흔한 나무계단 하나 없이 아직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행길이기에 더욱 애착이 갔다. 땀이 쏟아지고 숨이 턱에 와 닿았지만 고향산천의 추억이 스린 정겨움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스마트폰과 사진기로 연신 바꾸어 가며 사진 촬영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월류봉은 어릴 때부터 내가 늘 보고 자라왔던 곳이다. 우리 동리는 황간에서 추풍령 쪽으로 2Km 정도가면 오른 쪽 들 가운데 보이는 마을이다. 이름은 광평리라고 하지만 실은 넓은 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크게 문경세재와 추풍령을 들 수 있다. 문경세재는 선비들이 주로 이용을 하였지만 추풍령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는 추풍령이란 가을바람에 낙엽 지듯 과거시험에 낙선한다는 인식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이 길을 회피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고갯길 또한 좁은 곳이기에 경부선 열차와 고속도로 및 국도가 나란히 지나가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 들판이 넓은 광평리는 남쪽으로는 물한계곡으로 향하는 넓은 계곡 사이의 뜰과 서쪽으로 확 트인 황간 향교 앞 가학루와 월류봉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어서 넓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곳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오면서부터 살게 되었다. 외가댁이 면내에서 가장 잘 살았기 때문에 우리 집도 외가댁 농사를 많이 지으며 살았기에 일거리가 늘 많았다. 나는 칠남매의 셋째로 부모님 따라 일하러 자주 다녔다. 일하기는 싫었지만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마지못하여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일하다말고 늘 바라보는 곳이 황간 가학루와 월류봉 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보면 확 트인 실개천과 아련한 들판을 따라 서쪽에서 비치는 아름다운 월류봉의 석양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절벽위에 우뚝 서 있는 황간 향교 앞의 가학루는 한 마리의 학이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과 왼쪽으로 보이는 월류봉이 황혼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철새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야말로 오래도록 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명화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작품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가는 곳은 항상 월류봉으로 정해져 있었다. 월류봉에는 황간면 소재지에서 걸어 3Km 정도 되어 조금 멀기는 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친구들은 늘 월류봉으로만 소풍간다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월류봉으로 가는 길에 볼 것이 많았다. 월류봉 가는 길에는 용암으로 기암괴석이 능선을 이루는 장면을 볼 수 있었고, 능선이 끝나는 부분에 그림같이 다리가 놓여 있었다. 이 원천교 아래로 백화산에서 휘돌아 내려오는 맑은 물 석천이 흐른다. 물한계곡의 장교천과 추풍령에서 내려오는 소라천이 황간 금상구에서 합천을 하여 황간면 소재지를 지나, 월류봉 입구에서 석천과 합수를 하여 초강천이 월류봉 절벽 아래로 휘돌아 내려가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 원촌리 마을을 거쳐 나오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깎아지른 절벽이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 강물이 휘돌아 내려가는 강변 넓은 자갈 모래밭이 소풍지였다. 깎아지른 절벽을 올려다보면 절벽에 기묘하게 기암괴석 위에 자리 잡은 소나무와 새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넓은 모래벌판과 자갈 그리고 큰 돌이 한데 어우러져 넓은 백사장으로 펼쳐져 있다. 월류봉 절벽 아래쪽으로 큰 굴이 있는데 이굴은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내 어릴 때는 이곳으로 갈 수 있도록 연결이 되어 있는 구름다리는 월류봉과 어우러져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을 자아냈던 곳이다. 그래서 근동에서는 황간 월류봉이 아름답다하여 영동에서는 물론 경북김천에 이르기까지 이곳으로 소풍을 오기도 하는 곳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여름에 온 가족이 피서를 한 곳이 바로 월류봉이다.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이 트럭에 음식을 잔뜩 싣고 이곳 월류봉 모래사장 강변에 솟 걸어놓고 음식을 해 먹으며 물에 들어가 다슬기도 줍고 고기도 잡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곳,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함께 맑은 강물에 들어가 수영도 하고 물장구치며 즐겼던 곳이다. 아침부터 해가 지도록 어떻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자연이 아름다워서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워하였던 곳이다. 그날 이후 부모님 모시고 월류봉에 간일은 없었다. 사는 것이 무에 그리 바빴는지 그냥 고향 가는 길에 먼발치로 둘러보기만 하고 다닌 지 이순이 넘었다.

고향친구들을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고향에서 산행을 하자며 약속은 하였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워 약속만 하고 실행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친구들과 월류봉과 가까운 백화산을 등산하자는 제의를 듣고 백화산에 오른 일이 있었다. 그 때만 하여도 월류봉에는 깎아지른 암벽으로 등산로가 없어서 산행을 할 수 없는 것으로만 알았다. 백화산은 우리 고향에서 꽤나 높은 산이다. 겨울철에 눈이 쌓이면 백화산은 연꽃모양으로 맑고 투명하다 하여 아름답다는 소문으로 등산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친구들은 백화산에 올라 고향의 모습을 보며 옛날이야기로 옛 추억을 먹으며 즐거워하였다.

하산을 하고 찾아 간 곳이 월류봉이었다. 월류봉 절벽 맞은편에 송시열 선생이 후학을 위해 강론을 하셨다는 한천정사가 있고 옆에 한천가든이 있다. 친구들과 이곳에 들렸을 때 이 아름다운 곳에 식당을 인가해준 행정처사에 모두가 못마땅하다며 한 마디씩 입을 삐죽거리던 곳이다. 모처럼 고향친구들과 만나 옛 추억에 기분이 좋은 친구가 매운탕과 와인을 쏘겠다며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바람에 모두가 술을 거나하게 먹게 되었다. 아름다운 월류봉에 걸린 달과 친구들이 권하는 술잔 안에도 달이 떠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이곳에 다시 와서 밤새 달과 함께 노닐다 가겠노라고 다짐만 하고…….

어릴 때 고향마을에서 고향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은 서편 월류봉에 걸려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달은 손톱마냥 봉우리에 걸려 늘 내 마음을 애초롭게 하였던 곳이 월류봉이다. 한천가든 주인장에게 물어 보았다. 월류봉에 걸려있는 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언제인가 하였더니 보름쯤이란다. 보름날 이곳에 와서 밤새 달과 노닐다가 가겠노라 벼르고 벼르던 1박 2일, 오늘 이렇게라도 월류봉을 등산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제 친구들은 머나먼 세상으로 가기도 하였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이 아름다운 곳을 오르지도 보지도 못하니 이를 슬퍼하는 것이다. 아! 아름다운 월류봉 내가 정상에서 부르짖은 것은 이 한마디였다. 아름다운 월류봉 낮에 오르니 금수강산 아름다운 내 조국의 형상이 눈앞에 전개되고, 밤이면 아름다운 산수에 취해 달이 봉우리에 머물고 있는 내고향 월류봉의 아름다움을 혜당 양연화는 『한천정사』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하였다.

월류봉 절경 아래 법화천 흐르고
칠월 녹음 높은 산 덮어
바라보는 이 안을 듯하니
그 앞에 선 내가 비경의 일부 같네

천 년 머물던 달은 또 천 년 머물 텐데
오늘 잠시 흐르는 내(川)는
보름 밤 월류봉 절경에 취해
산허리 멈춰 떠나지 못하는
달님 마음 헤아릴 수 있겠네

여명에 초강천 물안개 피고
월류봉 계곡마다 운무 덮이면
토방 앞 툇마루 서서
법화천 월류봉 한 눈에 담던 우암 선생
살아 숨 쉬는 산수화 한 폭에
차라리 말문 닫고 상념 접어

사군봉(使君峯) 월류봉(月留峰)
산양벽(山羊壁) 용연대(龍淵臺)
냉천정(冷泉亭) 화헌악(花軒嶽)
청학굴(靑鶴窟) 법존암(法尊菴)
한천정사 팔경의 주련만 남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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