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동물이 밟고 지나간 흔적들이 길게 이어지며 길이 된다. 그래서 길에 사람의 흔적과 사연이 많다. 송림과 바다를 끼고 걸으며 서해안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태안반도의 '솔향기길'이 그러하다.
마음이 크게 편안해 지는 땅 '태안'. 해안선의 길이가 530여㎞에 이르는 태안은 천연송림과 해안선이 아름답다. 하지만 2007년 끔찍한 원유유출사고로 태안 앞바다가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였다. 그때 이곳의 주민과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이 인적이 드물었던 숲과 가파른 절벽에 길을 내며 바위와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바다가 제 빛깔을 찾아가면서 송림과 바다가 맞닿은 솔향기길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방제작업을 하러 고향으로 돌아온 차윤천씨의 노력이 더해지며 새롭게 탄생한 생태문화탐방로가 태안절경 천삼백리 '솔향기길'이다.
발길 닿는 곳, 눈길 주는 곳마다 사연과 삶의 향기가 배어있는 솔향기길이 만대항에서 여섬과 용난굴을 거쳐 꾸지나무해수욕장까지의 1구간(10.2㎞), 사목해수욕장과 구멍바위를 거쳐 희망벽화가 그려진 이원방조제까지의 2구간(9.9㎞), 볏가리마을에서 밤섬나루터와 소코뚜레바위를 거쳐 새섬리조트까지의 3구간(9.5㎞), 청산나루터와 사우치저수지를 거쳐 갈두천까지의 4구간(12.9㎞)으로 나눠지는데 산길을 걸으며 송림과 바다, 아담한 항구와 어촌마을을 둘러볼 수 있어 좋다.
지난 7월 8일, 815투어 산악회원들이 충남 태안의 솔향기길 1코스를 다녀왔다. 세상의 모든 길은 또 다른 길로 연결된다. 아침 7시에 몽벨서청주점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당진상주고속도로를 달리고, 서산시와 태안읍을 거쳐 10시경 이원면 꾸지나무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마침 생일을 맞은 회원이 있어 솔향기길로 가는 차안에서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해피버스데이투유와 겨울아이 축하 노래까지 불렀다.
솔향기길의 시작은 태안반도 북쪽 끝 만대항이지만 815투어 신광복 산대장이 1코스(10.2㎞) 산행을 꾸지나무해수욕장에서 시작해 반대방향으로 돌고 만대항에서 회를 먹는 것으로 계획했다. 차에서 내려 간단히 몸을 풀고 송림이 짙게 우거진 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꾸지나무해수욕장은 백사장이 작고 사람들이 적어서 더 아늑하고 정겹다.
산으로 들어서면 도투매기 언덕의 호젓한 산길이 이어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기에 좋다. 꾸지나무해수욕장에서 2.2㎞ 거리의 큰어리골 바닷가에 풍경이 멋진 자드락팬션이 있다. '해변으로 가세요'가 써있고 바닷가 방향으로 화살표가 그려진 이정표가 서있지만 더위 때문에 산길로 들어선다.
코를 간질이는 솔향과 자장가를 닮은 파도소리가 오감을 자극하는 솔향기길은 높이가 야트막한 둔덕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는 해안을 연결한다. 숲길, 백사장, 자갈길을 교대로 걷다보면 소박한 풍광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다시 숲으로 들어섰다가 작은어리골의 해변으로 내려서 주민이 판매하는 시원한 막걸리로 갈증을 해소했다. 낚시하기 좋은 와랑창 해안을 지나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꽉 들어찬 차돌백이 해안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같이 점심을 먹은 일행들과 해변을 걸었다. 산으로 들어서 임도를 걷다가 용난굴과 별쌍금약수터 이정표를 보고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용이 나온 굴을 뜻하는 용난굴은 해식동굴이다. 옛날에 용 두 마리가 이 굴속에서 도를 닦으며 승천을 기다렸는데 한 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또 승천에 성공한 용은 굴 입구에 하얀색 비늘자국을 남기고 실패한 용은 굴 앞에서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용이 승천할 때 밀고 나왔다는 굴문바위가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18m 길이의 용난굴은 끝부분이 두 갈래이다. 굴속에서 더위를 식히며 밖을 내다보면 태안화력발전소와 오가는 배가 보인다. 망부석 주변에 곰바위, 거북바위 등 모양이 기이한 바위들이 많다.
솔향기길에 재미있는 이름이 많다. 앙뎅이, 앙뗑이는 가파른 곳을 뜻하는 이 지역의 사투리다. 돌앙뎅이를 지나 여섬해변으로 간다. 솔향기길 중간지점의 여섬은 인근의 다른 섬에 이름을 붙이고 남은 섬이라 남을 여(餘)자를 붙여 '여(餘)섬'으로 불렀단다. 높이 20여m의 여섬은 인근에 이원방조제가 생기며 육지가 된 다른 섬들과 달리 방조제 밖의 작은 섬으로 남아있다. 물이 빠지며 여섬까지 50여m의 바닷길이 열렸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로 세상을 이등분하는 바닷가 굽잇길을 걷다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여섬이 자주 보인다. 밧줄을 타고 어렵게 바닷가로 내려섰으나 가뭄 때문인지 악너머약수터를 찾을 수 없다. 가마봉, 노루금, 칼바위를 지나면 근욱골해변이다. 일행들이 양주를 가지고 기다린다는 연락을 받고 산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샘너머, 헤먹쟁이를 지나 정자가 있는 당봉전망대에 도착했다. 조망이 좋은 전망대의 아래편으로 삼형제바위와 만대항, 서산시의 황금산ㆍ대산석유단지ㆍ범말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막금, 입성끝전망대, 큰구매쉼터, 목각인형을 지나 큰구매수둥의 바닷가로 내려서면 해변에 삼형제바위가 있다.
삼형제바위는 바닷가로 일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형제들이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세 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서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바위섬의 수가 다르게 보인다.
작은구매수둥을 지나면 산속에 물맛이 좋은 산수골약수터가 있고, 그 아래편에 작고 아담한 만대항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 곳'을 뜻하는 지명과 물이 빠진 포구가 인상적이다. 이곳의 횟집에서 싱싱한 회와 소주로 회원들과 정을 나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염전을 구경하며 희망벽화가 그려진 이원방조제로 갔다. 희망벽화는 원유유출사고를 극복해낸 희망을 표현했는데 길이 2.7㎞, 높이 7.2m로 전 세계 방조제 벽화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이곳에 태안 갈매기, 바다생물, 파도 등을 담은 작품과 자원봉사자들의 손바닥과 이름을 새긴 핸드페인팅이 있다. 방조제에 올라 즐거워하는 회원들의 표정이 다채롭다.
관광버스가 왔던 길을 되돌아 청주를 향해 달린다. 길만 이어진 게 아니다. 전선이 철탑과 철탑을 길게 이으며 한참동안 버스를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