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한국 아동청소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돌봄 공백 상태에 있는 아동은 모두 102만5600명이라고 합니다. 벌써 4년 전 통계이니 지금은 훨씬 더 심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이 우리나라 경제사정으로 인해 저소득층의 사정은 더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1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방임 아동 사례는 1783건으로, 2001년(672건)에 비해 3배가량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가난과 맞물린 가족해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방임되는 아이들도 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필자가 근무하는 시골 학교의 경우, 전학을 오는 학생의 대부분은 경제 사정이거나 부모의 이혼 등으로 조부모 집으로 보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귀농을 위해 양쪽 부모가 함께 시골로 내려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렇게 시골로 보내진 아이들은 상처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 아이들에겐 공부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상처 치유였고 돌봄이었습니다.
배고픈 한양, 사랑에도 굶주려
글로 쓰기조차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인 경남 통영의 한양(4학년, 10살)의 사례는 해체된 가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슬픈 일이지만 이미 예견된 불행한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동안 발생한 아동 관련 성범죄가 소외된 지역이었음을 통계 수치가 말해줍니다. "친어머니는 한양이 두 살 때 이혼했다. 건설일용직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 나가 밤늦게 귀가했다. 열 살 위 오빠는 새벽까지 동네 통닭집에서 일하고 낮엔 잠을 잤다. 다방에서 일하는 새어머니를 3년 전 맞았지만 파리채 같은 걸로 늘 아이를 때렸다고 여러 주민들은 말했다. 그 새어머니마저 한 달 전 집을 나갔다. 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밥을 지을 어른이 없었다. (한겨레 7월 24일치)"
이 기사를 접한 오늘 아침 필자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1960년대의 가난한 이웃들의 모습, 바로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나빠진 것은 이웃과의 단절입니다. 보리죽을 먹고 밀가루 수제비 죽을 나눠 먹을망정 그때의 이웃은 서로 돌봐주고 아껴 주던 사랑과 동정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 서로 의심하거나 범죄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필자 역시 4살에 집을 나간 어머니, 멀리 일을 나가면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오시던 아버지 대신 3년 동안 나에게 밥을 해먹이고 돌봐준 이웃집 복숙할머니 덕분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보살펴 준 이웃을 생각하니 '아이 한 명을 키운 데는 마을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오래 된 격언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절대 빈곤과 가족 해체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따스한 이웃의 사랑이었음을 생각하니 오늘 아침, 이제는 저 세상에 계실 복숙할머니께 감사드리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침 굶고 학교 점심시간 폭식하는 아이들
필자가 가르치던 아이 중에 철수(가명)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인 부모는 이혼하고 연로하신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침밥을 못 먹는지 점심시간만 되면 폭식을 했습니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먹을 것이나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서 바로 잡는데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굶주린 사랑의 결핍이 그 아이로 하여금 자극이 강한 게임에 중독되게 했고 식욕으로 충족을 느끼게 한 겁니다. 어른인 내 밥보다 거의 두 배를 먹는 아이를 지도하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철수는 결국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가까운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거기서는 밥을 굶거나 학교를 다니지 못할 걱정은 없겠지만 가족이 없는 아픔을 잘 이기고 다른 이웃 아이들과 잘 지내기를 빌 뿐입니다.
또 다른 여자 아이는 순이(가명)는 똑 같은 상황이었는데 밥을 먹지 못하여 몸이 허약할 정도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을 나가는 아버지, 혼자서 아침을 제대로 먹을 리 없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자기 책가방도 잘 이기지 못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곁에 앉아서 다 먹을 때까지 엄마 노릇을 하며 토닥여 주어야 토하지 않고 먹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몸도 작아서 다른 아이들이 따돌릴까봐 노는 모습까지 늘 관찰해야 하는 아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새벽에 일 나가면 늦잠을 자곤 해서 전화를 해서 학교차를 타게 하는 일이 빈번했던 그 아인 새엄마를 맞으면서 읍내학교로 전학을 갔으니 부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합니다.
방학이 즐겁지 않은 아이들
필자가 근무했던 학교는 대부분 시골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방학을 할 때가 되면 아이들은 시무룩합니다. 방학이 싫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동네에 친구들이 없고, 부모는 일을 나가니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친구가 되는 시골 동네의 지루함이 싫은 겁니다. 거기다 점심마저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대충 먹으니 학교의 점심시간이 좋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딱 일주일만 방학을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놀아줄 부모도 형편도 안 되는 지루한 방학이 싫은 아이들이 가엾습니다.
저출산 국가, 소중한 아이들 돌보는 안전망 최우선 정책이 되어야
2008년 국가청소년위원회가 13살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 2800여건을 분석한 결과,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각은 하교 뒤 부모가 집으로 올 때까지의 공백시간인 오후 2~5시로, 총 819건(29.3%)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방과 후 돌봄 교실을 운영하고 학교에서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영암지역의 돌봄 교실에서 저녁 식사까지 해결하는 시스템이라서 일하는 부모님들의 호응도가 높습니다. 친구들과 숙제도 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취미 생활도 가능하고 배고픔까지 해결한 뒤 가정으로 인계되고 있으니 공백기를 최대한 줄인 것으로 지자체(영암군청)와 전라남도교육청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돌봄 교사가 끝나는 시각에 맞춰서 지역의 돌봄 교실로 바로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을 모든 지역에 일반화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가 매우 심각한 나라입니다.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시골 실정입니다, 힘들게 살면서 얻은 소중한 아이들을 너무 쉽게 잃는 일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가난으로 해체된 가정, 사랑의 결핍도 아픈데 베고픔으로 우는 아이들은 다시 죽이는 성범죄까지 난무하여 동네가 무섭고 이웃집이 무섭다면 살아 있는 지옥입니다.
잘 사는 나라의 표지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아동 성범죄의 나라는 결코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부끄러운 나라이자 슬픈 나라입니다. 어떤 예산보다 앞서서 아동 돌봄 유지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소중한 아이들을 더 이상 울게 하거나 죽음으로 내몰지 않을 안전망을 설치해 주시길 정책 당국에 호소하는 바입니다. 지금 당장은 표가 나지 않겠지만 길게 보면 가장 절실한 정책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나라, 소중히 하는 정책으로 긴급 예산과 인력 배치를 빠른 시일안에 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