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에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의 '거세개탁'(擧世皆濁)이 선정됐다고 합니다. '거세개탁'은 중국 초나라의 충신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부지 문제 등 스스로 탐욕의 화신이었음을 보여줬고, 검찰이나 법원은 법을 남용하고 오용함으로써 정의를 우롱해, 모든 윤리와 도덕이 붕괴되고 편법과 탈법이 판을 쳤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한겨레신문 12월 24일 치 참고)
마치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 문화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최후의 인간형인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아픈 진실입니다. 세간에 회자되는 마야 문명의 종말론도 지구적인 멸망이라기보다는 정신문명의 타락을 경고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2년 종말을 말하는 마야 문명의 달력과 거세개탁은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릅니다. 싸이의 노랫말에 '갈 때까지 가 보자'는 말과도 잘 맞아 떨어집니다.
전 세계적인 불황, 빈곤층의 증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문명의 쇠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지금 물질문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황폐한 정신과 싸우는 중입니다. 가난과 고독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절망입니다. 절망 속에서는 꿈과 희망이 자라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프루스트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소처럼 그때그때의 먹을 풀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꿈과 희망의 도로에서 학생들이 집을 뛰쳐나가고 학교를 포기하며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아야 해결책이 나옵니다. 지탄의 대상이 아닌, 아파서 소리지르는 절규이기에 그 원인을 찾아 긴급 처방에 나서며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깊은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그러기에 해외의 어느 철학자는 2012년은 인류 문명사에서 철저하게 썩어야 하는 해라고 진단하는 걸 들었습니다. 상처가 나서 곪아 터질 때까지 완벽하게 기다려야지 어중간하게 항생제를 투여하여 곪지 못하게 하면 나중에는 더 크게 재발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자연계의 순환 법칙이 인류의 정신문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가정해 보면 겨울이 깊어야 새로운 봄이 도래합니다. 갚은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옵니다. 그러니 지금 혼탁한 것은 새로움을 향한 어찌할 수 없는 진행으로 본다면 좀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희망의 싹은 바로 학교이며 선생님이어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소년기를 매우 어렵게 보내며 제도 교육의 폐해를 많이 겪은 아인슈타인이 죽기 한 달 전에 회고한 글을 보면 학교 교육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아라우의 진보적인 주립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았을 때부터 자신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그 학교는 인도주의적 교육방침을 강조하고 개념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중시한 교육 철학자 요한 페스탈로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학교였습니다. "그 학교는 나한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 이론만 가르친 게 아니라 실험 실습도 강조하는 과학 수업이 아주 재미있었고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다. 자유로운 정신이 가득했고,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교사들도 권위적인 모습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라고 회고했습니다.
2013년을 설계하는 설레는 겨울방학을!
아인슈타인이 회고한 말 속에는 학교의 지향점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오래 전 학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친구가 있고 이론과 실습이 병행되며 자유로운 정신으로 소통하는 교실의 모습, 소박한 인정이 바탕을 이루어 인간미 넘치는 교실 말입니다.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학교라는 조직도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왔습니다. 그 파도가 끝까지 밀려서야 다시 돌아옵니다. 이제 2012년의 파도는 그 끝에 다다랐습니다. 이제는 희망을 품고 2013년의 파도를 탈 준비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적인 기의 흐름이 2012년을 지나야 새로운 동력을 얻는다고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마야 문명의 종말론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도 해석합니다.
이제 대부분의 학교는 겨울방학이라는 깊은 동면에 들어 갈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출발을 향해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낮만 계속되는 땅은 사막이 되고 맙니다. 밤이 없는 삶은 수면을 취하지 못해 병들고 맙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휴식을 취하며 자신의 나이테를 점검하고 치유하는 시기로, 새로운 희망과 꿈을 점검해 보는 귀중한 시간으로 가꿀 겨울방학이 설렜으면 좋겠습니다. 설레지 않고 그냥 그저 그런 겨울방학이라면 2013년은 출발부터 나약해지기 쉽습니다. 활력 넘치는 연수 프로그램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책을 만날 생각으로 벌써부터 설레고 싶습니다. 2013년의 파도를 탈 날렵한 배 한 척의 설계도를 시각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