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지만, 새로운 지도자를 뽑았지만 들려오는 소식들은 여전히 어두운 소식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목숨처럼 소중한 가족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죽음,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스스로 삶을 내려놓는 중장년의 아버지들, 불투명한 진로 앞에서 청춘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슬픈 소식들은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난다고 했습니다. 대자연의 밤은 아름다운 별빛을 숨겨놓고 설레게 합니다만, 우리네 삶에 찾아오는 깊은 밤은 아름다운 별이 숨어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기에 그처럼 참담한 일들이 펼쳐지는 거라고 생각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죽음의 질주를 멈추게 할 방패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채 누군가 슬픈 별 하나가 스러졌구나 체념하듯 받아들이며 가던 길 가는 우리들의 삶. 무엇을 위해서 어디까지 가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 질주 속에 자라나는 학생들조차 예외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 전염병처럼 번져가는 불안의 징후들은 사회적 타살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선택마저도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싶은 절규라고! 사랑 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은 가장 처절한 울부짖음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길 끝에 그처럼 절망의 낭떠러지가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걸까요? 잘 사는 길의 끝이 외로움과 소외이거나 빈곤과 실직이라니. 우리 사회는 분명히 어두운 밤에 진입했다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표출되고 있는 사회 현상의 저변에는 집단 무의식으로 자리 잡힌 더 큰 어두움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까닭입니다. 지금은 그 어두운 계곡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깊은 숨 몰아쉬며 가늠해 볼 때입니다.
선생님은 마지막 희망을 심는 사람
그러기에 인간의 의미와 삶을 가르치는 학교 현장에서는 희망의 등불을 더 높이 들어야 함을 생각합니다. 가족과 자신의 절망과 아픔을 과격한 행동으로 표출하며 친구와 선생님에게 투사시키는 그 이면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선생님의 혜안이 절실합니다. 상처 받고 힘든 선생님들이 아끼던 교단을 등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청춘을 불사르며 인생을 바친 교단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물러서는 선생님들의 아픈 가슴은 누가 위로해줄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노라고 크고 멋진 꽃다발에 묻혀 환송의 무대 위에서 사랑하는 교직원들과 제자들에게 아쉬운 고별인사를 들으며 지는 해를 담담히 바라볼 소박한 희망을 품을 수는 없을까요?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선생님만이라도 독야청청하셔야 한다고 강권하기에는 힘겨운 현실입니다. 선생님 역시 철인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지닌 똑같은 사람입니다. 한 가정의 부모이거나 자식이며 남편이나 아내인 선생님들도 같은 아픔들을 안고 살며 직업에서 오는 어려움도 외면할 수 없고 닥쳐오는 불행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유독 질병도 많은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필자의 주변에서도 교직의 스트레스로 질병에 시달리거나 세상을 일찍 하직하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향해 자라는 제자들을 염려하고 아끼는 마음은 세상이 어두울수록, 그 자리가 힘들수록 더 빛을 발한다고 봅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수기관을 찾아서 재충전의 시간으로 학구열을 불태우는 수많은 선생님들을 봅니다. 선생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처럼 내리사랑이기에 더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보답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제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동기이기에 절망적인 세상을 향해 던지는 희망의 소리이며 빛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더 빛을 발하는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일자리가 불안한 아버지, 병든 어머니, 외롭거나 가난한 제자의 등을 다독이고 부추겨 줄 희망, 선생님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오천석님의 무명교사 예찬론을 다시 읽으며 힘을 냅시다. 선생님! 지금은 슬기로운 인간(호모 사피엔스)을 넘어서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