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지식인의 삶 보여준 리영희 선생님
우리는 지금 노예인가, 자유인인가?
하루 중 2/3를 자신을 위해 쓸 수 없는 사람은 노예라고 일갈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에 대입시켜 보면 자신의 삶이 자유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8시간은 직장인으로 일하고 8시간은 수면을 취하면 물리적으로 남는 시간은 8시간이다. 남은 1/3만이라도 자신을 위해 쓰려면 대단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생물학적으로 절실한 시간을 빼고 남은 시간, 2/3를 자신을 위해 쓴다는 것은 바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일 때, 보람을 느끼고 자존감을 획득하며 업적이나 재물과 상관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을 때라고 가정해 본다. 그러니 직장에서 일하는 그 자체가 이미 자아성취의 시간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자신을 위해 쓴 시간임에 분명하다.
니체가 말한 노예라는 의미는 자신의 인생을 철저한 성찰로 제대로 낭비하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삶, 생존을 위해서 마지못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그분들에게 니체의 말은 엄청난 아픔을 안겨줄 것이다. 그의 말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실존적이다.
물질로 보상 받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실존적으로 활용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각종 스마트 기기와 오락성 프로그램에 매몰된 채 살면서 시간을 죽이는 블랙홀에 자신을 던지고 사는 삶에 대한 경고로 보고 싶다. 그러기에 철학자나 사상가는 인간의 삶이 썩지 않게 담금질하고 소금을 뿌려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철학은 책 속에만 있거나 진정한 어른이 부족한 세상에서 다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리영희 선생님의 삶은 자유인의 삶이었기에 그가 남긴 책을 읽는 것은 자유인의 삶을 흉내 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그는 <동굴 속의 독백>이라는 책에서 독서로 얻는 자유인의 길을 안내해 주고 있다. 독서로 얻는 자유인의 길은 크게 4단계이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니 그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진단하기를 반복해야 함을 느끼며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성적 자유인을 위한 독서
제 1단계, 지적 자유인 - 물질 현상에 대한 미신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단계
제 2단계, 인간적 자유인 - 종교적, 윤리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단계
제 3단계, 사회적 자유인 - 정치, 경제, 사회적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운 단계
제 4단계, 지성적 자유인 - 인간의 행복, 삶의 내용과 질이 향상. 자유는 곧 '지성'이다. 원숙한 지성이 진정한 자유인을 만든다. 아인슈타인이나 슈바이처, 사하로프와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리영희 선생님은 지성적 자유인을 위한 독서로 승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글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어렵지 않게 추리해 볼 수 있다. 배움의 높이와 상관없이 물질의 노예, 종교의 노예, 정치, 경제 등 사회적 예속으로 빚어진 관계의 노예 상태에서 벌어지는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기 때문이 아닌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그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 높은 학력과 권력, 명예를 가지고도 추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 아니다. 감추고 싶은 내면의 어두움이 없는 사람, 홀로 있어도 같이 있어도 투명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선 탓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성공한 모습이 아니니 감동을 줄 수 없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상황이 어둡고 힘든 때일수록 생각함의 기본이 되어주는 독서 교육으로 돌아가야 함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전자책으로 읽는 것보다 종이책을 읽을 때 전두엽이 더 활성화 된다고 한다. 컴퓨터 게임에 몰두할 때는 파충류의 뇌가 활성화 되어 공격성이나 충동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쉽게 흥분하고 본능적이 되며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여 자기통제력이 상실된다고 한다. 힘들겠지만 다시 인문학 독서를 끈질기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의 뇌를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인문학 독서다. 문학과 역사, 철학이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영양제이고 밥이다. 그들이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는 독서 교육의 본을 보여야 할 때이다. 어버이와 선생님이 먼저 읽으며 몸으로 행동으로 보이며 끌어주어야 한다. 말로 지도하는 교육은 가장 낮은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