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랍비가 자기 하인에게 시장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골라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하인은 혀를 사 왔습니다. 며칠 뒤 랍비는 또 하인에게 오늘은 좀 값이 싼 음식으로 사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하인은 또 혀를 사왔습니다. 랍비는 언짢아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며칠 전 맛있는 것을 사오라 했을 때도 혀를 사왔는데, 오늘은 싼 음식을 사오라고 했는데 어째서 또 혀를 사왔느냐?" 그러자 하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은 것으로 치면 혀만큼 좋은 게 없고, 나쁜 것으로 치면 혀만큼 나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상헌 지음<생산적인 삶을 위한 자기발전 노트 50> 중에서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라는 뜻으로 전당서(全唐書) 설시편(舌詩篇)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당나라가 망한 뒤의 후당(後唐)때에 입신하여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라는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五朝八姓十一君(오조팔성십일군)을 섬겼는데 다시 말하면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 한 명의 임금을 섬겼으니 그야말로 처세에 능한 달인이었습니다.
풍도(馮道)는 자기의 처세관(處世觀)을 아래와 같이 후세인들에게 남겼습니다. #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 安身處處宇(안신처처우) :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풍도(馮道)는 인생살이가 입이 화근(禍根)임을 깨닫고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입조심하고 혀를 감추고 말조심을 처세의 근본으로 삼았기에 난세에서도 영달을 거듭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들여다보면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씨가 번져서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가족끼리 불상사를 겪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살벌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풍도와 같은 인생의 지혜가 절실해 보입니다.
긍정의 말로 무장하자
그런데 교직이 힘든 이유 중에 말하기의 어려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통의 부재에서 진심이 와전되어 학생들이나 학부모와 겪는 갈등의 대부분의 발화점이 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기에 말하기는 인격의 완성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삼기도 합니다. 잘 나가는 정치가나 리더들이 말실수로 곤경에 처하여 자리까지 내놓기도 하고 법적인 책임 공방을 벌이기도 합니다.
세간에 회자되는 유행어 중에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아마도 어른이나 리더가 된 사람은 지혜로운 말을 적재적소에 짧은 금언처럼 하고 아랫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즐겨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 반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짧게 끝내도 될 말을 중언부언하거나 시간을 끌어서 상대방을 질리게 합니다. 베풀기보다는 어른 대우를 받으려하면 기피 인물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말을 줄이고 지갑을 자주 열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일본 나가노 현의 한 고등학교는 장점을 강조한 말로 문제아들을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학생을 평가할 때 " ~밖에"라는 말 대신 "~라면"이라고 했습니다. "~는 덧셈 밖에 못한다."가 아니라 "~는 덧셈이라면 잘할 수 있다." 로 평가한 결과였습니다. (좋은생각 2013년 2월호 35쪽) '아'다르고 '어'다른 표현을 통해 강점을 강화시켜서 동기부여를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말은 백번 옳은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말의 씨는 장기기억에 저장되어 한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겠습니다. 일자천금(一字千金)의 말을 날마다 순간마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심사숙고하여 말하는 습관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선생님들의 언어폭력으로 상처를 받는 아이들의 많다는 기사를 접하며 내가 뿌린 언어의 씨앗들이 아이들의 마음 밭에서 어떤 나무로 자라고 있는지 되돌아보며 교직의 무거움을 절감합니다. 새 학교, 새 학급, 새로운 아이들과 만나기 전에 긍정의 말로 정신무장을 하자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