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장 힘든 길을 걸을 각오가 됐거든 선생님이 돼라." 그가 고3일 때, 그의 담임교사가 내린 언도는 천형(天刑)과도 같았다. 인천 연수여고 국어교사, 전원하. 그는 오해와 반목의 높은 담장에 파묻힌 교정에서 '스승'이 아니라 '아빠'를 자처한다. 그 동안 숱하게 만나고 이별한 '내 자식들'의 사연을 가슴 찡하게 써내려 간 그의 교단일기에는 아직 희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18년 동안 천직으로 이어온 교직생활이 오늘도 행복하다.
"오늘부터 나는 너희들의 SF다"
공상과학소설(Science Fiction)? 아니다. 전원하 선생의 자작 별칭이다. SF, School Father, 학교 아빠….
'학교 아빠'의 저자인 인천 연수여고 전원하(42) 선생님은 별명만큼이나 괴짜다. 선생님 반의 급훈은 언제나 '충성'. 군대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인사말은 반대로 낯간지러운 '사랑해요'다. 그는 3월 첫 조례 때면 늘 이렇게 말한다. "오늘부터 나는 너희들의 SF다. School Father. 자, 아빠라고 해봐." 아이들은 닭살 돋는다며 처음에는 야유를 보낸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아빠, 사랑해요"하며 응석까지 부린다.
어릴 때 아빠에게 너무 맞아 대인 기피증을 앓고 결석을 밥먹듯 하던 제자에게 아침마다 문자 메시지와 모닝콜을 날리는 선생님, "선생님, 힘들어요"하고 찾아온 고3 여학생에게 "술 한 잔 할까"라고 말 할 수 있는 선생님, "선생님, 결혼약속하고 5년이나 사귄 오빠와 헤어졌어요. 전 어쩌면 좋아요"라는 스물 아홉 살 난 제자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가슴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 뒤 제자를 업고 언덕을 오르는 선생님….
그렇다. 전 선생님은 솔직함과 장난기를 통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요? 딱 한 번만 그들의 편이 돼 일단 망가져 보십시오"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망가진다.
수학여행을 간다. 장기자랑 1등 상 박스 밑에 맥주를 몰래 포장했다가 터지는 바람에 학생부장에게 혼줄이 난다. "다시 쌔벼왔다. 마셔"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와, 선생님 만세!"를 외친다. 교실 창문 너머 들리는 뻥튀기 장수의 "뻥" 소리를 듣고는 지갑을 꺼내며 "얼른 사와, 나눠먹자"는 선생님, 생일을 맞은 반 아이에게 선물과 카드를 건넨 다음 "너는 오늘 청소 면제, 자율학습도 빠지고 싶으면 빠져"라고 이야기한다.
"27세에 담임을 맡기 시작해 38살에 제자의 첫 주례를 서주었으니 나는 정말 출세가 빠른 사람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체벌과 촌지와 성희롱으로 난장판이 됐다는 교실에 대한 편견은 깨져나간다. 함께 웃고 울며, 장난치고 뒹구는 '학교 아빠'를 정작 집의 딸들은 불만이라고 그는 적고있다. "아빠가 학교 언니 오빠들 때문에 너무 바빠서 선생님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말이다.
"존재감을 되찾은 아이들의 얼굴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변화가 바로 환하게 빛나는 광채"라는 전 선생님은 "때론 침묵이 가장 좋은 대화일 수도 있어요. 가장 큰사랑은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18년 동안 아이들과 기쁨은 두 배로, 슬픔은 반으로 나누어 온 그는 오늘도 이렇게 되뇌인다. "한번 새끼는 영원한 내 새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