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우리 역사 속으로 들어와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조문국’. 그래서 조문국을 사람의 이름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문국(召文國)은 삼한시대 초기부터 세력을 떨치며 문화를 꽃피웠지만 1800여 년 동안 잊혔던 부족국가로 그 당시 쌓은 산성과 병마를 수련시킨 터가 금성산 정상에 남아있는 의성이 도읍지다. 지난 6월 6일, 경북 중부지역 일대를 주름잡으며 신라 탄생의 비화를 간직한 조문국을 만나러 지인 부부와 청주에서 2시간 30분 거리의 의성으로 떠났다.
의성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제오리공룡발자국화석(천연기념물 제373호)이다. 28번 국도를 달리다 학미교삼거리에서 냇가를 따라 상천초등학교 방향으로 접어들면 보호각 속에 있는 공룡발자국화석을 만난다. 공룡발자국화석의 대부분이 남해안에 있는데 내륙지방에서 만나기도하고 우리나라의 공룡발자국 중 단일 면적에 분포하는 밀도가 가장 높은 화석이라는데 의미가 크다.
길가에 있는 공룡발자국화석은 1987년 지방도로 확장공사를 하다 발견했는데 약 1억150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발자국 300여개가 경사진 단일층리면에 형성되어 있다. 이곳의 발자국화석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공룡의 크기나 보폭, 보행방향 등 공룡의 서식과 생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조문국 경덕왕릉으로 가다 지난 4월 25일 개관한 '조문국박물관'에 들렸다. 조문국박물관은 의성의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상설전시실, 어린이고고박물관, 민속유물전시관, 고분전시관이 있다. 옥상으로 나가면 조문국 경덕왕릉이 위치한 금성산고분군이 바로 앞에 보인다.
상설전시실에 '인간 중심, 의성 조문국 역사의 빛을 뿜어내다'를 주제로 조문국의 역사와 선사시대, 삼한시대, 삼국시대 및 조선시대까지 의성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나오면 야외에 고인돌과 석실고분, 한국의 그릇을 시대 순으로 나열한 도자기 정원, 공룡놀이터, 미로정원이 있다.
의성의 관광지에서 조문국(召文國)과 소문국(召文國)을 연달아 만난다. ‘조문국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소문국은...’ 자세하게 소개한 안내판이나 한자 ‘召’가 ‘부를 소, 대추 조’라는 것을 알고나서야 조문국과 소문국이 같은 나라라는 것을 이해한다.
금성면 일대에 산재해 있는 옛 무덤 200여기 중 경덕왕릉 일대를 공원처럼 잘 정비하였다. 이곳의 경덕왕릉은 신라의 경덕왕이 아닌 삼한시대 조문국의 왕이었던 경덕왕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삼한시대 소국 중 하나인 조문국이 신라 초 벌휴왕 때 신라에 편입되었다고 짧게 기록되어 있다.
여러 기의 고분과 녹색 잔디, 함지박같이 큼지막한 작약 꽃이 붉은 빛을 뽐내는 작약재배단지, 옛날 의성군수의 꿈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경덕왕릉, 고분을 닮은 경덕왕릉 기념관... 옛 무덤 사이로 난 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입구의 길가에 조선 태종 때 의성 현령으로 재직했던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 땅에 목화씨를 파종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문익점면작기념비가 서있다.
28번 국도를 달려 금성면 소재지로 갔다. 이곳에 경주 분황사석탑(국보 제30호) 다음으로 오래된 높이 9.56m, 기단 폭 4.51m의 탑리오층석탑(국보 제77호)이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탑사기에 ‘그 자체로 하나의 조형의지와 미감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되었고, 신라 석탑의 출발점으로 불려 기대를 하고 찾아갔지만 길안내가 부실해 골목길을 한참 헤맨 후 탑리중학교 동남쪽 담장 옆에서 보호막을 쳐놓고 공사 중이라 실물을 볼 수 없는 석탑을 만났다.
68번 국도변의 가음면 소재지를 지나 빙계계곡에 도착했다. 빙계계곡의 쌍계천 주변에 빙계팔경인 빙혈, 풍형, 인암, 의각, 수저, 석탑, 불항, 용추가 있다. 초입에서 맞이하는 빙계서원은 오현의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출입문이 닫혀있고 찾는 사람도 적다.
빙계계곡은 경북팔승의 하나로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이 들렸을 만큼 주위의 경관이 빼어나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개울 가운데에 큰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바위 꼭대기의 작은 돌에 경북팔승지일(慶北八勝之一)이라고 써있다. 바위 뒤편으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무지개다리가 멋지다.
빙산사지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은 탑리오층석탑을 모방한 모전석탑 형식으로 높이 8.15m의 아담한 크기다. 시대에 따라 표준어가 바뀌듯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문화재도 품격을 달리한다. 이곳의 오층석탑이 국보에서 보물로 재지정된 게 그러하다.
오층석탑 바로 옆에 한낮 햇빛이 강한 시간에 인(人)자 모양의 그림자가 보이는 인암이 있다. 사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작은 물방울이 큰 바위를 뚫듯 연약한 나무의 뿌리가 암석을 산산조각낸 모습이 더 신기하다.
빙계리 얼음골(천연기념물 제527호)은 경사면에 쌓여있는 암석의 틈에서 여름에는 찬공기가 나와 외부의 더운 공기를 만나 물방울과 얼음을 만들고,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가 나와 추운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자연현상을 보인다. 곳곳에 풍혈이 있는 이곳에서 한여름에도 고드름이 달려있는 빙혈을 만나는데 종교를 떠나 '선자흥악자망(善者興惡者亡) 익자생손자사(益者生損者死)'이라고 써있는 글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빙계계곡에서 북쪽으로 1시간여 달리면 한옥의 고가와 재실들이 정겹게 모여있는 사촌마을이 점곡면 소재지에 있다. 600여년 역사에 걸맞게 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마을로 만취당(경북유형문화재 제169호), 영귀정(경북문화재자료 제234호) 등의 고택이 있다. 만취당은 건물을 지은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의 호를 따서 만취당이라 하였다. 만취당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큰 나무가 사촌리 향나무(경북기념물 제107호)다.
사촌리의 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은 김자첨이 조성한 방풍림으로 수령 400~600년, 높이 20~30m 의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500여그루가 800여m 이어지며 울창한 숲을 이룬다. 서애 유성룡의 어머니가 친정인 사촌리에 들렸다가 이 숲에서 유성룡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79번 국도를 달리다 신기삼거리에서 고운사길을 따라가면 주차장 앞에 등운산고운사를 알리는 산문(山門)이 서있다. 이곳에서 1㎞ 거리의 일주문(조계문)까지는 평지에 가까운 비포장 산길이다. 이곳이 오래된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천년 숲길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느릿느릿 걸으면 누구나 천년의 시공을 넘나든다.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지은 사찰로 원래 고운사(高雲寺)였는데 신라 말엽 가운루와 우화루를 세운 최치원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바꿨다. 임진왜란(1592) 때 사명대사가 승병의 기지로 사용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 위에 걸쳐 앉은 가운루(경북유형문화재 제151호)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계곡 바닥 가장 낮은 곳의 암반에 돌기둥을 세우고 나무기둥을 올린 다음 마루를 놓아 2층으로 꾸몄다. 가운루 뒤편 왼쪽에 있는 건물이 우화루다.
단청의 빛이 바랜 만세문을 들어서면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해 1774년에 건립한 연수전이 있다. 숭유억불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 왕실과 연관된 건물이 사찰 안에 세워졌다는 게 약간은 생뚱맞다.
약사전의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호)은 높이 79㎝의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비교적 보존이 잘 되었다. 대웅보전은 단청이 곱고 웅장한데 뒤편으로 보이는 키가 큰 소나무들이 멋지다. 비탈진 언덕을 오르면 나한전 앞에 삼층석탑(경북문화재자료 제28호)이 있다. 극락전은 대웅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큰 법당 역할을 하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청주로 가는 길에 당진상주간 고속도로의 속리산휴게소에 들렸다. 주변의 높은 산과 동물 캐릭터가 친근감을 주는 어린이놀이터, KT보은위성센터와 연봉사이에서 붉게 빛나는 석양도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