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학교장에게 주어진 권한이 부족하여 제대로 된 학교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었다. 물론 교장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주변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교장의 권한이 그리 크지 않다는 데에 공감한다. 교사들이 기를쓰고 반대하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다수가 소수를 이기는 구조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교사들이야 학교가 민주화되었다고 하겠지만 교장의 권한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 곧 학교의 민주화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되었다고 해서 대통령의 권한이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에는 교육감의 권한 마저도 제로화 시키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서울시의회에서 벌어졌다. 바로 혁신학교 조례가 교육위원회에서 통과된 사건이다. 진보성향이거나 전교조 출신의 교육의원들이 독단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학교에서 교장의 권한을 무력화 시키는 과정과 너무나도 닮았다.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처리한 것이다. 보수성향의 의원들은 이미 퇴장해 버린 상황에서 자기들 끼리 처리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깨뜨리는 것으로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민주화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면 실망 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현재 교육개발원에 용역을 주어 서울형혁신학교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곧 공청회도 열릴 것이라고 한다. 대략 10월이나 11월이면 연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연구에는 진보성향이나 전교조 출신도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이 연구의 의미도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혁신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장 단점을 정확히 하는 것이 연구의 중요 쟁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혁신학교 운영의 방향을 정립하겠다는 것이 서울시 교육청의 방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런 혁신학교 조례의 통과로 인해 이 연구의 결과가 휴짓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구결과에서 나오는 모든 단점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 바로 혁신학교 조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교육감이 혁신학교 조례로 인해 권한을 침해받고 그 조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혁신학교 지정 및 취소에서 혁신학교운영위원회의 결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교육감을 철저히 배제하고 독립된 기구에서 해결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감에게는 권한을 내려놓고 위원회에서 결정되면 그대로 따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교육감을 껍데기 교육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조례통과를 서두른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즉 현신학교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혁신학교가 자칫하면 대거 지정취소될 위기에 봉착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최초 지정된 혁신학교들이 3년을 지나면서 인근학교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조례를 서둘러 통과시켰다고 보는 것이다.또다른 문제점이 더이상 커지기 이전에 무력화시키기 위한 심산이었을 것이다. 무상급식 등으로 인해 학교운영지원비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감액된 상황에서 혁신학교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자 하루빨리 혁신학교가 자리잡도록 서둘러 조례를 통과시킨 것이다.
이미 많은 예산을 들여 서울형혁신학교 연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조례를 서둘러 처리함으로써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성향의 교육의원들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혁신학교 문제를 단순히 조례제정으로 해결하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매일같이 찜통 더위에서도 에어컨을 제대로 틀지 못하는 학교들이 대부분임에도 특정학교에 대거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당장에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혁신학교 조례도 본회의에서 통고과 되어서는 안된다. 그들만의 리그인 혁신학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상위법을 위반한 위법사항 보다는 서울시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수업혁신, 교육과정혁신, 학교운영혁신 그 어느것도 혁신학교 운영으로 혁신된 것을 찾기 어렵다. 단지 그들끼리 모여서 논의함으로써 학교장을 들러리 서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장의 권한을 무력화 시키고 학교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민주화라는 말인가. 전문직 출신들 마저도 혁신학교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혁신학교의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앞뒤가 안맞는 주장이다.
교감에게 업무를 떠넘기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교감에게 압박을 가하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교장이 의견을 이야기하면 개인적인 의견이니 더이상은 이야기하지 말라고도 한다고 한다. 교장에게 발언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 학교들이 많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학교가 혁신학교인지 무엇을 혁신한다는 이야기인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런 학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 조례를 무리하게 통과시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그들도 느낄 것이다. 혁신학교 조례로 인해 그들 스스로 발목을 잡힐 수도 있을 것이다.
무리하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혁신학교 조례는 폐기 되어야 한다. 모든 교사와 모든 학생, 모든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가 혁신학교가 될때까지는 조례가 제정되어서는 안된다. 자율을 강조하여 학교장의 권한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 혁신학교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늘상 주장하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지켜 주어야 한다. 본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통과를 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안은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수정하고 더 큰 문제가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혁신학교로 인해 교육계가 더이상의 갈등을 겪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혁신학교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 하여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지정취소도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개선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혁신학교 문제가 자꾸 커지게 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이 되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는 재고려 대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