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고온과 뜨거운 열기로 팔월 초순의 하루하루는 끈끈한 풀처럼 달라붙는다. 날씨가 더우면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활동을 많이 한다. 이런 활동의 부대낌과 삶이 묻어나는 때가 장날이다. 오일장 아침의 다채로운 풍경! 고구마순과 푸성귀 등속을 좌판에 펼쳐놓고 손길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세월의 이야기가 수묵담채화처럼 번지고 있다.
며칠 전 일이다. 아이의 외할아버지 제사라고 늦은 오후 시간 처가를 찾았다. 홀로 팔순을 바라보는 장모님은 지난해보다 허리가 더 굽어 노쇠함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더위도 상관없이 땀방울을 훔치며 집안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자식들 갈 때 가져가라고 이것저것 챙기는 것을 보니 죄스러운 마음이 하염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런 모습보다 더 가슴을 아리게한 일이 있었다. 제사 시간을 기다리며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둘러앉아 밤하늘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작년과는 달리 두엄냄새며 파리, 모기의 성가심이 덜해 외양간을 보게 됐다.
작년 같았으면 벌써 손자 손녀들이 외양간 여물통 앞에서 짚을 주고 어미 소의 콧방귀 소리와 송아지 울음소리가 울렸을 것인데 올해는 외양간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문득 지난 이월 장모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제 힘도 부치고 허리도 꼬꾸라져서 소도 못 먹이겠다고 하시며 소를 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로 된 것이었다.
장모님과 소! 스무 살에 시집와서 가난과 춘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닭이며 돼지를 기르다가 마침내 소를 키우게 되었고 그것은 농사며 자식들 뒷바라지에 큰 보탬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외양간을 비우지 않으셨는데…….
장모님은 어둠 속에서 외양간 쪽으로 눈길을 주며 살며시 눈시울을 적신다. 그랬다. 요즘도 아내는 하루가 끝나면 꼭 전화를 드린다. 그런데 며칠 전 전화를 하니 부산의 아들 집에 장모님이 계신다고 하였다. 혹 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라도 가려고 부산에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그 해답은 소를 판 뒤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 아들네에 간 것이었다. 멀리 떨어진 자식에게 그런 사정을 표현도 안 하고 가족처럼 지내던 소를 팔아버린 공허함을 달래려고 발걸음을 놓은 것이었다.
장모님의 삶, 두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님 밑에서 자라 시집와서 평생 이 산 저 산 약초를 캐 오일장에서 팔고 간혹 송아지를 내어 자식들 등록금도 보탰다고 하셨다. 아마 노년기에 선 우리네 부모님 모두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장모님에게 있어 소는 피붙이나 마찬가지로 생각된다. 온종일 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좌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불 꺼진 집엔 적막감만 숨을 죽이고 있다. 하지만 대문간을 들어서는 인기척에 어둠 속에서도 장모님의 발소리를 알고 소는 콧방귀를 끼며 운다고 하셨다. 그런 반김의 울음소리에 장모님은 잘 있었느냐고 물어보고 여물과 사료를 준다. 짐승이지만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멀리하게 만드는 그 이상의 존재였다. 하지만 소를 판 후로 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적막감 속에 대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청개구리, 소쩍새 울음소리만 마당과 외양간을 채우고 있다.
살면서 혼자라는 것! 그 고독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식! 품 안에 들었을 때 자식이지 이제 성장하여 모두 제 살길을 찾아 떠난 지금, 멀리서나마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마음의 반의반 만이라도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시구가 생각난다. ‘하루 종일 밭에서 힘들게 일해도, 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우는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의 아들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자식은 항상 받기만 할 뿐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을 매일 일으키기란 어려운 것이다. 어쩜 이것은 삶의 한 단면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부모는 자식의 거름이라고 희생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런 생각보다 노쇠함 속에서 하루를 지내시는 마음과 뒷모습을 떠올려보면 죄스러움이 하늘에 닿을 것 같다. 며칠 있으면 또 오일장이다. 파장 후 짐을 꾸려 불 꺼진 집, 텅 빈 외양간을 보며 지나쳐온 삶들을 반추하실 장모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를 여기까지 길러주신 부모님! 흐르는 시간 속에 언제나 마냥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