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 자사는 스승이 죽자 세상을 등지고 풀이 무성한 늪가에 숨어 살았다. 어느 날 위나라 재상으로 있던, 역시 공자의 제자 중 하나인 자공이 말 네 필이 이끄는 마치를 타고 자사를 찾아왔다. 그는 자사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부끄럽게 여기며 "어쩌다 병이 들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자사가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라며 가난한 것과 병든 것의 차이를 말했다. 자공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그 자리를 떠났으며 평생 동안 자신의 말이 지나쳤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김원중 지음 사마천의 생각수첩 <통찰력 사전> 51~52 쪽 인용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가난하지 않다. 적어도 굶주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옛날보다 적다는 뜻이다.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그만큼 가난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넘친다. 자사가 말한 병든 사람도 넘친다. 몸이 병든 것을 말함이 아닌, 도를 배우고 실행하지 못하는 마음이 병든 소식들이 넘친다.
더 많이 배울수록 도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세상이 살기 좋아져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해서 걱정이다. 재물은 마실수록 목이 말라지는 탓인지 그 재물에 병든 사람들이 저지르는 온갖 악행들이 천태만상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병든 사람들이 활보하는 세상 속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줄이는 최상의 길은 역시 교육이라고 확신한다. 그 선봉장은 바로 선생님이다. 내 제자가 나를 간절히 그리워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제자들은 결코 병들지 않고 살 수 있을 터이니. 배움이 도를 향한 도구여야 하는데 재물과 명예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세상을 바로 잡는 힘은 바로 선생님이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간절히 그리워 해줄 제자를 가졌는가?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며 세상을 등지고 살며 스승을 그리워 한 자사의 일화는 가슴 절절히 다가선다. 나름 선생으로 살아온 33년을 돌아보며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두고 가는 날 천 명이 넘는 제자들 중에 자사처럼 눈물 흘리며 그리워 해줄 제자가 없다면 내 인생은 헛산 것이니! 새삼스럽게 공자의 위대한 모습이 시간의 벽을 넘어 우뚝 서서 선생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 공자는 훌륭한 제자들이 남긴 위대한 기록물 덕분에 빛을 남긴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가르치는 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우며 엄숙한 만남이어야 하는지 깊은 숨 몰아쉬게 만든다.
이렇게 정신 번쩍 나게 하는 죽비 소리를 듣기 위해 땀 젖는 줄 모르고 책 속으로 피서를 떠나는 방학이 좋다. 그 한 줄을 만나기 위해 책 속을 헤맨 오늘 하루가 즐겁다. 적어도 나에게 행복은 일자천금을 만나는 순간에 있다. 선생이라는 천직 덕분에 가난하지도 병들지도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감사한 인생이라고 자부한다.
세상이 온통 흙빛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아픔으로 신음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죄를 멀리하는 양심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살아온 내 인생을 돌아보며 방학 기간을 소중히 하고 있다. 학기 중에 미루어 둔 연수 활동을 위해 15일, 90시간 직무 연수(과학 실험 연수, 독서토론, 학습전략 심리상담)로 2학기 교육 활동을 위해 충전 중이다. 방학 기간의 절반은 직접 연수 활동으로, 나머지는 독서 연수를 하며 2학기의 마시멜로를 저장해 두어야 달릴 수 있으니.
현장 참여형 직접 연수 활동을 좋아하다보니 내 자식보다 어린 후배 선생님들이거나 제자뻘 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다. 참여하는 연수의 대부분은 내가 왕언니가 되다보니 뭐든 더 열심히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평교사로 무명교사로 사는 인생도 얼마든지 긍정적인 의미가 있음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요즘 똑똑한 후배들은 전문직이 된 다음에 결혼을 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내놓고 말하기도 하고 일찍부터 승진을 꿈꾼다. 때로는 그 방향성이 가르침보다 점수 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 능력 있는 선생님이 전문직이 되거나 승진하는 것은 좋은 일이 분명하다. 교육 현장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가치 있는 교육적 힘을 발휘하는 리더십을 가진 선생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열심히 하다 보니 그 자리에 가 있는 것과 달리 처음부터 자리에 연연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진정성이 결여된 채 다소 불성실하거나 줄 서는 일에 눈을 뜬 일부를 말하는 것이다.
연수중에 만나는 낯모르는 새내기 선생님들은 민첩하고 영리하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하니 상담을 요청해 오는 경우가 많다. 먼저 길을 내고 지나온 경험으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마음의 상처를 덜 받으며 제자들을 보듬을 수 있도록 조언해 줄 수 있는 보람도 쏠쏠하다. 교직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자리인지, 힘든 만큼 커 가는 제자들을 보는 기쁨이 고통보다 더 크다는 진실을 전하며 사람을 남기는 교직의 숭고함을 나눌 때 눈빛을 반짝이는 젊은 선생님들을 만나는 기쁨은 방학 중 연수 활동이 주는 또 다른 열매라서 소중히 여긴다.
이제는 물러설 준비를 하며 교직의 열매를 갈무리 할 시기다. 내 인생을 바쳐 달려온 교직이 6년 쯤 남았으니 내려서는 길이 바쁘지 않게, 알곡을 흘리지 않게 잘 주워 담을 시기임을 자각하며 연수 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해졌다. 교직이 주는 배움의 선물로 방학이 주는 행복한 시간들이 더 소중해졌다. 이제는 나도 자사와 같은 제자 하나만이라도 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니 지나온 시간이 아쉽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나를 필요로 하는 제자들이 넘치니 그 또한 경력이 많아 높은 연봉을 받는 책임으로 소중히 감당할 일이다. 간절히 그리워 해줄 제자 하나 남기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