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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과잉입법에 교육이 피멍든다

중국 진나라 효공이라는 왕의 신하 중에 상앙이라는 이가 있었다. 상앙의 가장 큰 공적이라면 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진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끈 것이다. 이를 통해 현이라는 행정 단위를 만들고, 거기에 관리를 파견하였고, 농민을 징병하였기에 진이 강국이 된 것이다. 게다가 상앙은 도량형을 통일하고, 세금제도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중에서 상앙이 많은 신경을 쓴 것은 법제도를 만든 후 백성들이 모두 지킬 수 있게 강제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법을 잘 지키지도 믿지도 않았다. 어느 날 상앙이 성문 앞에다 방을 붙이길, “이 나무를 옮기는 자에게 억만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고 갸웃하기만 하였다. 그때 어느 호기심 많은 사람이 그 나무를 한번 옮기자 상앙은 약속대로 큰 상금을 내렸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은 상앙이 만든 법을 믿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앙도 여러 결과물에 고무되어서 그런지 자만심이 일었다. 세금을 많이 걷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필요하다면서 자작농을 육성하기 위한 여러 희한한 법을 만든다. 예를 들면, 아버지와 아들들이 한 집안에 살지 못하게 한다든지, 한 집안에 남자 2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가하지 않으면 세금을 두 배로 물린다든지 하는 법말이다. 호구수를 최대로 늘린 후 세금, 징병을 많이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한편 상앙은 진을 부강하게 만들고 그 공로로 넓은 땅을 받았다. 그때 주변에 있는 조양이라는 사람이 상앙에게 조언하길, 욕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충고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상앙을 잘 봐주던 왕 효공이 죽자 그를 미워하던 신하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상앙을 모함하였다. 황급히 달아나던 상앙이 민가의 어느 집에 숨으려고 문을 두드리자 집주인이 그를 알아보고서 이렇게 말을 하더란다. “당신이 만든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통행증이 없는 사람을 재워주면 공범자가 되어서 크게 경을 치게 되는데 그것을 모르시오?”
상앙은 하늘을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법의 폐단이 이렇단 말인가”
상앙은 끝내 비참하게 정적들에게서 죽임을 당했다.

법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을 정하기 위해 만들어야 그 참 가치가 있다. 법(法)이라는 글자 그 자체를 해체해 보면 물(水)처럼 간다(去)고 해서 법이라고 한다. 사람이 늘어나고 세상인심이 각박해짐에 따라서 사회를 유지하고 형평성,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시민대표들이 법을 대신 만들고 공평하게 시행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원리다.

그런데 이 필요한 법이라는 것을 잘못 만들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크다. 특히, 필요하지도 않은 법을 만들 경우는 더 그렇다. 요즘 모 국회의원이 학교에서 학생 번호 부르기 금지 법안을 발의한 모양인데, 이는 전형적인 법규만능주의에 기댄 법규과잉으로 본다. 하지만 해당 의원이 하나의 인격체인 학생을 이름이 아닌 1번, 2번등으로 호칭하는 것은 학생을 비인격적인 주체로 인식하게 하므로 그렇게 하지 말도록 법률 제정이 아닌 교육기관에 협조요청이나 캠페인 등을 통한 수단을 강구 했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사례였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요구자료를 통해 학교 현황에 대해서 한 번 조사한 후, 번호로 부르는 일부 경우를 가지고서 그것을 법으로써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학생 인권을 고양하려는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교사와 학교의 기를 꺾게 만드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본다. 잘못된 관행은 없애야 하고, 올바른 쪽으로 유도해야 하지만 이번과 같이 도를 벗어난 법으로 그것을 없애려 한다면 또 다른 과잉입법을 하는데 다름 아니다. 그 국회의원은 본연의 업무인 법률 제정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잘못된 법 제정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것이다. 원래 법은 그 자체가 정의의 최소한 이어야 한다. 최대가 되는 순간 법은 순기능을 잃고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 속에서 무수히 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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