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청주팔백리 회원들이 경주의 파도소리길로 생태문화답사를 다녀왔다.
오전 7시 17분 흥덕구청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와 경부고속도로 평사휴게소에 들리며 바닷가로 향하는 사이 송태호 대표의 인사말, 김춘곤 대장의 일정소개, 강태재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상임고문의 삼남의 길목에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했던 충청인의 기질과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민중과 지역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1천℃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식으며 부피가 수축하면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표면에 틈이 생긴다. 절리로 불리는 이 틈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받으면 단면의 모양이 4~6각형 기둥모양의 주상절리로 발달한다.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아는 주상절리가 남동해안에도 많다. 31번 국도를 달리다보면 울산 북구 산하동의 강동화암주상절리(울산기념물 제42호)를 비롯해 경주시 양남면 바닷가에서 주상절리를 연달아 만난다.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의 양남주상절리(천연기념물 제536호)를 이은 바닷가 산책로가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11시가 넘어 하서항이 있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읍천항을 시발점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읍천항을 목적지로 하면 오른쪽 풍경을 바라보며 걷고, 읍천항에 도착해 벽화를 감상하며 여유를 누릴 수 있어 좋다. 파도소리길 안내도를 보고 방파제 앞으로 가면 지역의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다. 이곳 할머니들의 순박한 인정에 이끌려 두 번이나 문어를 사갔다.
벽화를 구경하며 하서항을 돌아서면 바로 해파랑길의 10코스와 겹치는 양남주상절리가 시작된다. 기울어진주상절리부터 누워있는주상절리, 위로솟은주상절리, 부채꼴주상절리 등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길가에 솟아오른 바닷가에 대해 자세히 공부할 수 있는 현장도 있다.
이곳은 2009년까지 군부대의 해안작전경계지역에 위치해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런 까닭에 1.7㎞의 파도소리길에 초소 등 군인들이 경비를 서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기암괴석과 해안선이 멋들어진 이색적인 풍경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바닷가의 주상절리군을 따라 소나무가 늘어선 산책길이 천혜의 절경을 자랑한다. 경치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산책하는 내내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작은 언덕위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양남주상절리를 대표하는 길이 10여m의 ‘부채꼴 주상절리’를 만난다. 돌기둥이 장작처럼 차곡차곡 쌓여 구부정하게 석축을 이룬 오른쪽 끝에 육각형 모양의 주상절리 수백 개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부채꼴주상절리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만큼 희귀하다. 바위는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부채꼴주상절리도 보는 사람에 따라 백두산 천지, 꽃을 피운 해국, 여인의 주름치마를 연상시키며 ‘동해의 꽃’으로 불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중앙의 움푹 팬 웅덩이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져 흘러드는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
‘느린 우체통’이 입구에서 맞이하는 전망대가 가까운 곳에 있다. 이곳에서 읍천항 방향의 아름다운 바다풍경, 흰색과 빨간색의 등대가 가깝게 보인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를 걷거나 하얀 건물과 해송사이로 나무 데크 길을 따라가면 산책로의 끝부분에 출렁다리가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몽돌과 갈매기들이 화음을 연주하는 몽돌해변과 벽화마을로 조성된 읍천항을 만난다.
물 위로 올라온 배(읍천갤러리호), 등대사이를 한가롭게 오가는 어선이 읍천항의 풍경을 여유롭게 만든다. 읍천항 150여 동 건물의 담벼락에 그린 벽화가 세상을 너그럽게 만들며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멘트 위에 그린 그림이지만 옛날 학생들이 걸상으로 사용했던 의자에 앉아 여유를 누린다. 활어직판장에서 구입한 회를 안주로 소주도 취하지 않을 만큼 마신다.
읍천항을 나와 감포 방향으로 달린다. 여행의 여유를 누리며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한다. 월성원자력발전소를 지나면 오른쪽 바다의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과 왼쪽 산기슭의 감은사지(사적 제31호)가 가까이에 있다.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의 위대한 업적을 완수하고 죽어서도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한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불린다. 갈매기들의 쉼터인 문무대왕릉 앞 바닷가에서 왼편의 감포 방향을 바라보면 이견대(사적 제159호)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견대는 감은사지를 완공시키고 바다의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출입할 수 있도록 금당의 뜰아래에다 동쪽 바닷가로 구멍을 뚫은 신문왕이 용을 만나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은 곳이다.
감은사지(感恩寺址)는 왜병을 진압하고자 사찰을 건축하던 문무왕이 죽자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완공시켰는데 삼층석탑과 금당터가 잘 보존되고 있다.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은 2중의 기단에 사각형의 동·서 두 탑을 같은 규모와 구조로 쌓아올렸다.
석탑이 만든 그늘에 앉아 강태재 고문으로부터 탑의 층수가 9층·7층·5층·3층으로 변화하는 과정, 단순하지만 강한 모습을 보이는 감은사지석탑과 작지만 균형미를 갖춘 석가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청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