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다. 바람 소리뿐이다. 골목을 걷는 발소리가 담벼락에 부딪혀 울린다. 텅 빈 외양간, 몇 달간의 빈집 마당엔 지푸라기와 낙엽, 나동그라진 빈 병들이 지키고 있다.
시골집 대청마루를 두른 샷시문은 자물통을 매단 채 침묵이 흘러내리고 있다. 빈집이라 하여 문이란 문은 죄다 자물통으로 채워져 낯선 이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혼자 계신 장모님께서 지난 추석 때 뇌졸중으로 쓰러져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몇 주 전 병원을 찾았었다. 언어 기능이 돌아오지 않아 의사 표현이 안 되는 장모님을 대신하여 옆을 지키는 처남이 시간 되면 집에 들러 방아 찧은 쌀과 왕겨 속에 파묻은 무며 된장, 양념 등속을 챙겨가라 하였다. 한해 농사가 마무리될 쯤 쓰러지셔서 거의 다 지은 농사를 내버려둘 수 없어 도회에 사는 처남이 주말을 이용하여 갈무리한 모양이었다.
정적이 흐르는 대문 앞. 성하실 때 같으면 차 소리만 듣고도 굽은 허리를 반쯤 펴며 자네오나 하며 몇 개 남지 않은 숭숭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달려 나오셨을 것이다.
눈앞이 흐려진다. 덩달아 아내의 얼굴도 어둠이 가득하다. 주인 없는 집의 형세를 아는지 대문간에서 집을 지키던 절굿공이 두께만 한 엄나무도 밑동이 썩어져 널브러져 있다. 아마도 사람의 기운을 느끼지 못해서인가 본다. 그 한쪽에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진 늙은 감나무가 앙상한 모습으로 잔가지를 파란 겨울 하늘에 드리운 채 나목으로 서 있다.
맡겨 놓은 열쇠를 찾으러 골목을 돌아 아내의 큰 어머니 댁을 찾아간다. 중간중간 빈집을 허물고 만든 텃밭의 이랑에 듬성듬성 남은 배추 몇 포기들이 고적함을 씹고 있다. 그리고 시금치, 봄동, 겨울초가 창호지만 한 겨울 햇살을 쫓으며 햇빛 바라기를 하고 집 뒤 바람만 내 닫는 산골에 까막, 까치들만 밤나무 가지에서 날개를 쉬고 있다.
큰집에도 역시 인기척이 없다. 아흔을 바라보는 분이 가실만한 곳은 동네 경로당 뿐일 것이다. 걸음을 돌려 경로당으로 향한다. 그곳 바깥에는 걷기 보조용 손수레가 서너 대 서있다. 쿨럭이는 기침 소리와 도란도란 이야기가 문틈으로 흘러나온다. 문을 열자 금세 알아보시고 반쯤 편 허리로 넘어질 듯 일어서서 손수레를 잡으신다. 몸을 부축하며 집에 계시지 않고 왜 경로당에 계시냐고 묻자 혼자 사는데 춥고 기름값도 비싸 낮에는 경로당에서 밥해 먹고 따뜻하게 있다가 밤에만 집에 오셔서 주무신다신다. 이런 모습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 농촌의 대표적인 모습일 것이다.
열쇠를 받아들고 고방 문을 연다. 그 속에는 장모님의 손길이 그대로 스며있다. 무를 챙기려 커다란 고무통을 열고 비닐을 덮어 동여맨 끈을 풀자 왕겨 속에 지난가을의 푸름과 싱싱함을 간직한 무가 만져진다. 문득 이년 전 겨울을 떠올린다. 김장철 택배로 보내온 무를 설 지나 바람들기 전 간식 거리로 겨우내 두고두고 깎아 먹었었다. 달짝지근함과 시원함이 가슴속까지 전해졌던 무였다. 그때 작은 녀석은 생무가 뭐가 맛있느냐고 물었다. 먹거리가 풍부한 요즘 아이들에겐 환영받지 못할 일이었다.
연세가 드시면 마음도 어려지는 모양이다. 빈 마당 한 귀퉁이 얇은 겨울 햇살이 비치는 곳에 앉아 큰어머니는 담배를 피워 물고 푸념을 하신다. 자네 장모는 여유가 있어 병원 신세를 질 수 있지만 내가 큰일이네. 죽을 때가 다 돼 가는데 쓰러지면 이 몸뚱어릴 어느 자식이 좋아할까? 긴 한숨을 타고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 담배를 왜 피우세요 하며 그만 피우라고 하자 이제 얼마나 더 살기라고 하며 오히려 핀잔을 준다.
짧은 겨울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챙긴 무와 쌀 등속을 차에 싣는다. 다시 문을 닫고 자물통을 채우자 비 내리는 화면의 삼류극장의 끊어진 필름처럼 시간은 정지된다. 다시 시간의 수레를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깨 회전근이 닳아서 없어져도 아프다는 말씀 한마디 안 하시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제 한 몸 돌볼 줄 몰랐던 장모님이셨다. 이제 쌀과 간장, 된장 가져오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뒤따라오던 아내의 눈자위가 붉어지고 덜거덕거리던 손수레에 의지하며 나오던 큰어머니는 해 떨어진다고 빨리 가라 재촉한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꼬깃꼬깃 지전 몇 장을 손에 쥐여 드리고 골목을 빠져나온다.
이제 설이고 추석이고 찾아가면 버선발로 뛰어 나와 내 강아지 하며 반겨줄 장모님은 계시지 않는다. 아이들의 마음에 외가, 외할머니에 대한 큰 감동의 흔적은 나이테로만 남겨질 것이다. 반복이 되풀이되는 삶의 풍경. 그중 무채색의 계절인 겨울 속에 언제나 유채색의 기억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