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꼭 열매를 보고 싶었는데…. 밋밋한 타원형으로 짙은 갈색 반점의 윤기 자르르한 아주까리 씨앗을 이년 전 가을날 산 밭에서 몇 알 주워왔다.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모습이 참 예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손바닥 모양 같은 잎과 단단한 줄기가 매력을 발산하여 집에서도 한번 심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듬해 봄 석분가루로 가득 찬 마당 한 귀퉁이에 서너 알 심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어 썩어버렸거나 새가 물어갔겠지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추석 무렵 가는 줄기를 들어낸 채 아기 손바닥 모양 같은 아주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싹을 틔워 어떻게 하려고 이럴까? 얼마 있지 않으면 겨울이고 얼어 죽을 텐데.
아주까리는 피마자라고도 하며 열대 아프리카가 원산으로 전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널리 자란다. 키는 약 2미터이며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상 한해살이풀로 분류된다. 봄에 파종하여 그해 가을에 열매를 수확하고 어린잎은 쌈이나 나물로도 먹고 가시로 덮인 집 속의 열매는 공업용 윤활유나 설사약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 싹을 틔워 열매를 본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며 그냥 두고 보기로 하였는데 이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가는 뿌리 부분의 밑동과는 달리 튼튼한 줄기로 높이 자람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흙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으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넘어지기 일쑤여서 고추밭에 사용하는 지지대로 줄기를 잡아주었더니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는 듯 11월 중순경에는 1미터가 넘게 자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마 차가워지는 기온을 보며 생존의 위협을 느껴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입동을 지나 대설을 넘기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자 약간 걱정이 되었다.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저 녀석이 서리를 맞으면 금방 말라져 죽을 텐데 우산이라도 받쳐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어차피 운명 아닌가?
그렇게 12월이 지나고 새벽 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는 소한 무렵 잘 있나 싶어 보았더니 어제까지 대나무 굵기 같은 줄기와 통통한 손바닥 같은 잎들이 간에 절은 배추포기 마냥 축 늘어져 있다. 아! 이 일을 어쩐담. 결국은 서리보다 영하라는 한기에 잎의 수분이 얼어서 세포막이 파괴되어 죽은 것이다. 축 처진 잎들과 그 사이에 채 여물지 못한 열매들! 흡사 여름 한낮 불볕더위에 지친 호박잎보다 더 숨이 죽어버렸다. 조금 빨리 싹을 틔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래도 흙 속이 아닌 물기가 없는 돌가루 속에서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데 시간이 필요하였으리라. 이럴 줄 알았다면 도토리나 밤처럼 껍질을 약간 벗기고 심었다면 제때 싹을 틔웠을 것인데 배수가 잘되는 곳에서 단단한 껍질이 물기를 머금어 부패하려면 장마 기간을 거쳐야 했던 것이었다.
이런 아쉬운 마음을 뒤로 이번에는 다락 정리를 한다고 올망졸망한 작은 상자를 열자 몇 알 남은 양파들이 홀쭉한 몸으로 한 줄기 빛을 찾아 연노랑 싹을 내밀며 몸부림하고 있다. 본디 양파는 내한성 작물로 마늘처럼 가을에 모종을 심어서 겨울을 지나 초여름에 수확하는 작물인데 어떻게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시간의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락에는 양파 외에도 싹이 말라져 쪼글쪼글해진 감자들도 있었다. 식용으로 쓴다고 보관했다가 몇 개 남지 않았다고 그냥 지나쳤는데 살려달라고 심어달라는 묵언의 외침과 원망을 얼마나 하였을까? 싹을 틔운 양파와 감자! 더는 먹거리로 가치가 없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다.
살아가면서 지구 위의 모든 동식물에는 생체시계가 있다. 장끼도 길고양이도 번식 철이 되면 그 울음으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 못하는 식물은 그 싹을 내어 파종과 번식의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제때 감지하고 흙과 만나게 해야 썩음을 통하여 새로움을 만들고 다음 대를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파종 시기를 잘 맞추지 못하여 싹을 틔운 식물은 반풍수 집안 말아먹듯 그 결과를 잇지 못한다. 이 모든 것 또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겨울도 이제 끝자락이고 입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도 마당 한쪽에는 축축 늘어진 아주까리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그리고 빈 화분에 버려진 양파는 그래도 살 것이라고 싹을 피워 올리고 있다. 머지않아 봄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는 그 빈자리에 아주까리 씨앗을 물에 불려 딱딱한 껍질을 약간 벗겨서 심어볼 작정이다. 그러면 올가을에 그 고운 빛깔의 열매를 다시 만져 볼 수 있지 않을까? 말라버린 아주까리와 철 지난 감자와 양파의 싹이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준비의 시간이 필요함을 부릅뜬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