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마을에서 섬진강의 물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섬진강은 남한에서 네 번째 큰 강으로 전라남북도의 동쪽 지리산 기슭을 지나 광양만에서 남해와 만난다. 지리적으로는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3도에 걸쳐 있고 역사적으로는 1385년경 섬진강 하구에 침입한 왜구들이 광양 쪽으로 피해가도록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부짖었다는 전설 때문에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고 부른다.
봄은 남도의 젖줄 섬진강에서부터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철이면 섬진강가에 매화, 산수유꽃, 벚꽃, 개나리꽃이 지천이다. 그중 도로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벚꽃 터널이 최고의 볼거리다. 휴일 같으면 차량들이 넘쳐나 짜증이 났겠지만 월요일에 떠난 여행이라 드라이브를 즐기다 경치 좋은 곳에서는 ‘찰칵’ 기념사진을 남기며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서 운조루를 지나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화개장터까지 간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 경상도와 전라도의 문물과 인정이 오가던 곳이 화개장터다. 장터는 예전처럼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지만 벚꽃 때문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아치가 더 빛나는 남도대교가 지리적으로 양쪽을 가깝게 만들었다.
대지주 최참판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한 많은 근현대사를 폭넓게 그린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평사리를 지나면 섬진강의 물가에 평사리공원이 있다. 공원 앞으로 모래가 고운 백사장이 펼쳐져있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예전에 이곳을 여행하며 썼던 시 한편을 떠올린다.
- 섬진강의 봄 -
밭두렁 태우는 연기가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차창너머로 들어온 흙냄새가 나들이 나선 사람들의 들뜬 마음이
눈으로 귀로 코로 가슴으로 봄을 알린다
지리산으로 불어온 남녘의 훈풍 산동마을 노랗게 물들인 산수유 섬진강 모래 속에 숨어있던 재첩 강물 위에서 출렁이는 매화향기 모두 봄소식을 품었다
봄은 그렇게 지리산 아래로 섬진강가로 모여들고 있었다
평사리공원을 지나면 섬진강의 물줄기가 넓어지고 물의 양도 많아져 느낌이 다르다. 섬진강이 남해와 만나는 남쪽 끝 하동까지 벚꽃이 터널을 이뤄 눈이 호강을 한다. 벚꽃 아래 물가로 지리산 둘레길을 잇는 나무데크가 길게 이어진 풍경도 색다르다.
우리나라 최고의 벚꽃길로 손꼽히는 곳이 쌍계사 십리 벚꽃길이다. 화개장터를 지나면 쌍계사 입구까지 구불구불한 화개천을 따라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들이 5km 거리에 길게 늘어서있다. 하얀 꽃송이들이 하늘을 덮은 모습이 장관인데 꽃망울이 가득 매달린 가지를 화개천으로 길게 늘어트린 모습을 바라보거나 길 양편에서 머리를 맞대며 만든 하얀 동굴길을 걸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활기가 넘친다. 젊은 남녀들이 백년해로를 기약하며 걷는 '혼례 길목'으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