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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몸살 앓는 농다리

5월 18일, 청주팔백리 회원들이 차와 도보로 통합청주시의 중심 물줄기가 될 미호천의 물줄기를 답사했다. 회원들을 태운 자가용이 오전 9시경 흥덕구청을 출발하여 처음 도착한 곳이 진천에 있는 농다리다.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진천! 충북 진천은 충남․충북․경기도의 경계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 기름진 넓은 들에 물이 마르지 않아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렸다. 살기 좋은 곳이라 역사유적과 자연관광지도 많다. 그중 하나가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에서 천년 세월의 물살을 이겨낸 농다리(충북유형문화재 제28호)다.

살아서는 농사를 짓기 위해 건너고 죽어서는 꽃상여에 실려 건넌다는 다리가 바로 농다리다. 농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00여m의 돌다리로 진천농교(鎭川籠橋)로 불린다. 교각을 세우고 돌을 반듯하게 깎아 만든 다리가 아니라 멀리서 보면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쌓아 축조한 다리로서 석회 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고하며 장마가 져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고려 때부터 이곳에 자리 잡은 상산 임씨의 집성촌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고종 때 임연이 고향 마을 앞 세금천에서 날마다 세수를 했다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세수를 하다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던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 정경을 딱하게 여긴 임연이 바로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놓았고, 일을 마친 용마는 기운이 다해 죽었는데 용마에 실었던 마지막 돌이 떨어져 지금의 용바위가 되었다.

역사가 오래된 다리라 전설도 많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고구려로부터 낭비성을 되찾은 기념으로 농다리를 놓았다고도 한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던 한일합방과 한국전쟁 때는 동네사람들이 잠을 못잘 만큼 며칠 동안 울었다고 한다. 농다리 위에 흰 눈이 쌓인 정취는 진천의 멋진 풍경을 칭송하는 상산팔경 중 하나인 ‘농암모설’이다.


입구에 농다리의 우수성과 역사를 알리는 농다리 전시관이 있다. 이곳에 농다리의 봄·여름·가을·겨울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사계절 사진, 세계 각국의 다리, 전설을 영상으로 구현한 매직 비전, 농교의 제작 원리, 사진전 등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전시관 앞에 서있는 농다리유래비와 원형복원사적비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면 농다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왜 '농다리'라고 불렀을까?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쌓아 지네다리와 활처럼 생긴 농다리 ‘농(籠)’자의 해석이 분분한데 대해 안희숙 문화관광해설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바구니 농(籠)자로 다리의 물이 잘 빠져나가는 것을 뜻한다고도 하고,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농(篝)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용’자가 와전되어 ‘농’이 됐다고도 한다.

진천군 평생학습센터에서 주관하는 토요 농다리 놀이학교가 4월부터 6월, 9월부터 10월까지 총 5개월 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농다리 주차장 일원에서 운영된다. 놀이학교는 놀거리가 마땅하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해 군이 양성한 민속놀이지도자들이 땅 따먹기, 망 줍기, 구슬치기, 쌍륙놀이, 고누놀이, 투호, 종이비행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참가비는 없고 단체는 방문 전 진천군 평생학습센터(전화 539-7735~7736)로 예약하면 된다. 날씨 좋은 날 가족들과 농다리에 가면 오랜 역사와 자연풍경이 멋진 추억을 선물한다.


역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얼기설기 얹어 놓은 것처럼 허술해 보이는 이 돌다리가 강한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천년 세월을 이겨낸데 과학과 철학이 담겨있다.

하늘의 기본 별자리를 응용해 28개의 교각을 만들었다. 모양이 제각각인 사력암질 자석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고, 상단의 폭과 두께가 좁아지게 하여 물살의 영향을 덜 받도록 만들었다. 잠수교처럼 장마 때는 큰물이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하고, 물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구불구불 지네가 기어가는 형태로 만들었다.

농다리 위에서 하류 방향을 바라보면 중부고속도로가 바로 앞이다. 고속도로 위의 차들이 미호천을 가로지른 농다리를 내려다보며 씽씽 잘도 달린다.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과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곳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천년 세월을 이겨낸 농다리를 건너며 산위에서 흘러내리는 인공폭포도 구경한다.


천년정을 지나 산위로 오르면 정상에 조망이 좋아 전망대 역할을 하는 농암정이 있다. 정자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쉼터로 좋은데 좌우로 지네가 기어가는 모양의 농다리와 용이 승천하는 형상의 초평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수지 뒤편으로 보이는 산이 높이 598m의 두타산이다.

농다리에서 초평저수지로 가는 언덕에 돌을 쌓고 오색 헝겊을 걸어 놓은 성황당이 있다. 성황당은 용고개 일명 살고개 정상에 위치한다. 성황당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물가로 산책로가 이어지는 초평저수지가 물을 가득 담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왼쪽으로 진천군청소년수련원, 오른쪽으로 피서대가 보인다. 하늘다리로 이름붙인 멋진 구름다리와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모습도 볼거리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즐겁도록 예능 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

물가에 있어 물에 대한 얘기가 많이 전해온다. 저수지로 수몰된 화산리에 부자마을이 있었고, 마을에서 시주를 거절당한 것을 괘씸하게 여긴 스님이 ‘앞산을 깎아 길을 내면 큰 부자마을이 된다’고 하여 사람들이 그대로 하니 그곳에서 피가 나온 후 마을이 망하여 없어졌다. 이 일대가 용의 형상인데 스님이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곳을 깎아 길을 내게 하여 용을 죽였다. 용의 허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모인 곳이라 하여 피서대가 되었다. 농다리도 고려시대 부친상을 당하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여인이 물을 건너가지 못하자 다리를 놓아주었다는데서 유래한다.


미호천과 초평저수지 사이로 초평면 오갑리와 화산리를 연결하는 산길이 있다. 이 산길에서 내려다보면 먼발치로 평화로운 들녘과 진천읍내가 보인다. 전국 최고의 쌀을 생산하는 들판가득 녹색세상을 만든 풍경이 보기 좋다. 중부고속도로 변에 세워진 농다리 표지판도 가깝게 보인다.


농다리는 상판석 양쪽으로 교각이 튀어나오게 하고 교각의 양끝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천년 세월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보다 물 바닥이 깊어졌고, 오랜 세월이 흐르다보니 조금씩 허물어지고 변형이 되어 교각과 상판의 길이나 간격 등이 일정하지 않고 다리의 방향도 중간에 조금 휘어 있다.

소중한 것은 그 모습이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잘 관리하여야 한다. 그런데 주말이면 3~4천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천년의 향기를 간직한 농다리가 몸살을 앓는다. 교각에 금이 가고 허물어진 돌이 물길을 막는 모습이 위태롭다. 상판석이 내려앉아 할아버지와 손주가 다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농다리 주변이 유원지화 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쯤에서 ‘농다리를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농다리에 찾아오는 것을 막자는 게 아니다. 청주팔백리 송태호 대표의 이야기와 같이 농다리 아래 50~60m 지점에 다리 위에서 농다리와 인공폭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출렁다리나 나무다리를 놓아 농다리를 잘 보존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천년의 향기를 느끼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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