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안(西安)행 열차에 몸을 실은 한 사내가 있다. 목까지 단추를 꽉 채운 갑갑한 옷차림과 만지면 바스라질 것처럼 메마른 얼굴이 몹시 외롭고 지쳐 보인다. 그가 천천히 말문을 연다.
"저는 시안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죽음마저 정복해 불사의 인간으로 영생하려 했던 진시황이 자신을 둘러싼 수만 대군의 호위를 받으며 영원불멸을 성취했는가,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극단 물리의 연극 '서안화차'(西安火車·극본 연출 한태숙·7월6일까지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02-764-8760)'는 이렇게 주인공 상곤(박지일)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꿈꿔온 목적지를 향해 기차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의 기억은 점점 과거로 달음박질치고, 관객은 서서히 상곤의 어두운 회상에 잠식당한다.
그의 어머니는 중국 근대의 격동기 때 한국으로 건너온 화교. 생업으로 몸을 팔았고 상곤은 외간 남자와 어머니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유일한 위안은 친구였던 찬승(이명호). 그러나 찬승은 동성애자인 상곤을 경멸한다. 세월이 흘러 호텔에서 재회한 둘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흐르고, 결국 상곤은 찬승을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찬승을 죽여 조각상으로 만든다….
결코 잡을 수 없는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잡고자, 무덤을 만든 70만 명을 순장하고 병마용을 만든 진시황의 갈망과 찬승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상곤의 소유욕이 교차되며 극은 전개된다. 상곤은 시안에 가까워지는 새벽의 여명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립죠. 네.
많이 그리워요."
그의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죽은 찬승의 말대로 "변태에 관음증까지 있는 미치광이 병든 놈"의 고백이라 치부하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것도 사랑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냉정하게 기억을 더듬어 가는 가하면, 비굴하게 연인에게 매달리기도 하는 다중적 성격의 상곤의 모습이 존재의 불안과 외로움,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랑과 집착의 뒤엉킴 속에서 방황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겹쳐질 즈음 "어떤 사람은 나룻배와 같고, 어떤 사람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有的人像船 有的人像水 水可以行船也 可以船)"는 '장자'의 명구가 우리말과 중국어로 장중하게 울리며 막이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