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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모시옷, 그 안의 담긴 여인네의 삶

초복을 지난 오일장은 옥수수, 고구마 줄기, 열무 등속의 푸성귀로 넘쳐난다. 장날 이른 아침 시골버스 문이 열리면 내리는 사람은 대부분은 할머니들이다. 장날을 맞아 물리치료도 받고 휴가 온 자식이며 손주에게 줄 먹거리라도 산다고 서두르지만, 마음만 앞서간다.

여름 아침 시장은 부산하고 혼잡스럽다. 시원찮은 걸음으로 인파를 헤치며 이곳저곳 가격을 알아보는 할머니 중 꽃무늬를 수놓은 모시 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눈에 띈다. 모처럼 읍내 외출한다고 손질해 놓은 모시옷을 입은 모양이다.

모시옷! 이는 예부터 우리나라에서 삼베와 더불어 여름 한 철을 지내는 중요한 옷이다. 하지만 손질과 관리가 까다로워 한량들이나 입으면 제격이라고들 한다. 양잿물에 담가 햇볕에 바래고, 풀을 먹여 다림질하여 입으면 그 까슬함은 칠팔월의 염천도 쫓아낸다. 하지만 이 하얗고 연푸른 까슬함 뒤에는 우리 여인네의 한이 숨어 있다. 그 한이 얼마나 진했으면 길쌈을 애쌈이라고도 하였을까?

나의 기억 속 어머니는 농번기를 제외하곤 사시사철 한평생 모시를 손에 놓으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때는 밥에도 반찬에도 모시 나래끼가 들어 있는 적도 있었고 이게 원인이 되어 음식 정갈하게 못 한다고 아버지와 다투신 적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진종일 혼자 방안에 모시를 삼으며 곡도 가사도 알아듣지 못하는 흥얼거림을 토해내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열여덟에 시집와서 한평생 못 보고 살아온 뒤안길을 생각하며 뿜어내는 한탄 조의 가락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춘삼월이 지나고 해가 길어지면 뻐꾸기와 비둘기는 배고픔을 달래려는지 종일 울어댄다. 그 소리에 질세라 신록으로 짙어가는 앞산 뒷산에는 ‘딸그락딸그락’ 베틀의 메아리가 마을을 감싸고 집마다 울리는 베틀의 음률이 봄날을 더 길게 했다.

어머니는 모시 삼기를 하였지만 직접 베를 짜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막내인 나를 낳고서 이질에 걸려 복막염을 앓은 후 베틀에 오르지 못하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항상 하는 과정은 모시를 사 와서 째고 삼는 부분까지였다. 보릿고개 시절 주린 배를 종일 나물죽 한 그릇으로 때우고 부띠끈을 풀고 베틀에서 내려오면 땅이 노래진다고 하셨다. 그런데 딱 한 번 모시 베를 준비한 일이 있었다. 죽기 전에 아들에게 모시로 된 중우 적삼을 만들어 주신다며 째고 삼고 메기만 하고 짜는 과정은 남에게 품으로 주신 일이었다.

모시 베가 나오기까지는 열 번을 넘는 과정을 거친다. 대게 모시는 유월에 수확한 것과 베는 봄에 짠 배를 으뜸으로 치지만 모시를 재배하지 않은 우리 집은 장날이면 언제나 새벽 일찍 아버지께서 태모시를 사러 가시곤 하셨다. 그리고 사온 태모시는 가래를 지어 머리 쪽을 틀어 왼손으로 잡고 손톱과 이빨로 잘게 째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앞니는 언제나 많이 닳아있고 엄지손가락 손톱만 유달리 길었다. 이렇게 째기가 끝나면 방 한쪽의 전대에 가래를 걸치고 앞니로 뜯고 끊으며 손과 무릎으로 비비고 꼬며 이어 실을 만들어 둥근 반지 그릇에 담는다. 이러나 보니 입술은 갈라지고 무릎의 허벅지는 언제나 거뭇거뭇했다. 나중에는 무릎이 아프다고 장화의 고무판을 잘라서 대고 비벼 꼬아 삼기도 했다. 둥근 반지 그릇에 모시가 코일처럼 자리를 잡아 넘치려 하면 한 바디가 되었다며 고운 짚으로 십자 모양으로 엮어 묶는다. 이 모시바디가 열여섯 뭉치 정도 모이면 날기를 한다. 대개 농가의 마당이 좁아서 긴 골목이 있으면 그곳에서 이웃 아낙네끼리 품앗이를 하며 도와주기도 했다.

모시 날기와 매는 날은 신이 난다. 학교를 마치고 어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을 시키며 귀찮게 하면 어머니는 동전 한 닢 주면서 과자 사 먹으라 한다. 그때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항상 모시만 나는 날이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베를 맬 때면 특유한 냄새가 집을 감싼다. 왕겨 불 위에서 보리죽과 된장을 섞어 만든 풀을 솔로 먹여 익힐 때 나는 냄새이다. 이 과정을 통해 처진 실, 부실한 실을 바로잡고 튼튼한 옷감을 만들 채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맨 베는 베틀에 앉혀 씨줄과 날줄을 교차 시기며 베를 짜는 작업에 들어간다.

모시옷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항상 빠듯한 살림에 학비를 댄다고 모시바디 뭉치가 모이면 보따리에 싸서 읍내 장에 내다 파셨다. 그런 날 어머니는 언제나 허전하고 휑한 표정을 짓곤 하셨다. 하나의 실로 이어진 모시바디는 짧은 모시 한 가닥 한 가닥 모두 입술을 거쳐 이빨의 홈을 내고 무릎을 피딱지로 물들게 한 산고의 증표였다. 그래서인지 모시옷을 볼 때 마다 숨죽여 하얗게 피어난 우리 여인네의 서늘한 인고의 세월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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