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만남으로 시작한다. 부모와의 만남을 비롯하여 친구나 직장 그리고 사회, 조국. 더 멀리 가면 온 세계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만남이라는 말을 사람에 한정하고 말면 그 의미는 축소되고 만다. 만남을 인문환경에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남의 의미를 더 확장해서 자연환경이나 고양이 한 마리, 풀 한 포기, 구름 한 점, 바람 소리에 까지 이를 때,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진리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을 생각하면 만남이라는 단어조차 설명하는 일이 부질없을 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위대한 만남은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단연 책이 첫 손에 꼽힌다. 좌절하는 나를 일으켜 세운 것도 책이었고 슬퍼하는 나를 위로해 준 것도 책이 먼저였으니, 책을 빼놓은 내 인생은 껍데기가 되고 말리라. 인간은 평생 동안 자기 뇌의 10%도 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인류 역사상 뇌사용량이 최고라는 아인슈타인도 20%에 미치지 못한다. 그의 두정엽 사용량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최근 급격하게 부상한 분야가 뇌과학이다. 뇌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금년에 본 영화중에 단연 으뜸은 추석에 본 <루시>였다.
뇌과학을 등에 업은 영화 <루시>
주인공 루시는 돌발적인 사고로 인해 뇌세포를 100%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세상의 지식을 순간적으로 흡입하고 상대방을 꿰뚫는 지혜를 가지게 된다. 세상의 온갖 사물들을 순간적으로 모두 알아버린다. 자신의 과거 기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억까지 순간적으로 읽어내는 초능력자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주의 시원, 빅뱅의 한 점에까지 이르는 초고속 순간이동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마저 모든 만물에 깃들게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노자의 무위자연이 연상되는 장면, 부분이며 전체이고 없으면서도 있는 '그 무엇'이 된다.
루시가 남긴 한 마디는 "시간이 존재다" 라는 돌직구였다. 인간의 한계는 바로 시간이다. 과거는 없고 미래는 모르며 현재만이, 바로 지금만이 존재하므로.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도 이미 지금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른 나인 것처럼. 뇌과학과 철학, 생명과학, 의학을 비롯하여 종교 차원의 접근도 인상적인 영화다. 영화 제작의 기법이 현란한 점, 컴퓨터 그래픽의 무궁한 응용이 전편에 깔려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할 만큼 집중시키는 영화였다. 영화 제작자나 대본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인지 혀를 내두르게 하는 영화다.
모름지기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엔딩 음악이 끝나고도 자리에 남아 영화의 주제와 목소리를 복기하며 생각그물 속에 대어를 낚는 손맛을 안겨주는 영화, 몰입도가 높은 영화여서 좋았다. 달달한 사랑 이야기도, 감성적인 흐름도 없는, 다소 폭력적이고 섬뜩한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는 영화라서 좋았다. 특히,방대한 독서량이 바탕에 깔린 영화라서 더욱 좋았다.
노자와 장자의 철학까지 바탕에 깔린 것도 참 좋았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뇌세포를 루시처럼 100% 활용하는 날이 온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가 먹은 약 중에 한 알만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지금의 상태보다 우수한 지성을 지닌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부러웠다.
평범한 인간인 내가 사그라져 가는 나의 뇌세포의 노화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는 길은 단연 독서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루시도 지식을 흡입하는 것으로 뇌세포의 능력을 극대화시킨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나라 교육에 절실한 과제는 독서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강조하면서도 소홀한 대목이다. 이는 곧 어른들의 독서가 문제다. 좋은 책을 읽지 않으니 좋은 생각이 생길 리 없다.
책을 읽음은 나라를 일으키는 근본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그 가시는 자신을 찌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나타난다. 무책임하게 내뱉는 언어들, 책임지지 않는 약속과 말의 난무로 세상이 흙탕물이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말꼬리를 잡고 시비가 붙고 들으려 하지 않으니 공감도 소통도 없다. 책방이 문을 닫고 부도를 내는 출판사들이 넘친다. 리더가 읽지 않고 어른들이 읽지 않으니 독서교육은 일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행처럼 가을에만 반짝하고 만다. 부모가 읽지 않고 직장인이 읽지 않으며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라고생각한다.
다시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이다. 책을 열심히 읽는 위정자와 리더, 부모와 선생님의 본보기만이 독서교육의 답이다. 말로 하면 반항하여도 몸으로 보여주면 통한다. 반복된 본보기 교육이 정답이다. 이 나라의 어른들이여! 부모님들이여! 선생님들이여! 아이들 앞에서 책을 봅시다. 책을 읽음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라는 명심보감의 충언은 진리에 가깝다. 아니, 한 사람을 일으키고, 집안을 살리며 직장을 세우며 이 나라도 세운다. 책을 버린 민족에겐 미래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