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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제 맛 나는 전주한옥마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 전주. 한옥마을이 풍기는 멋과 옛 정취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 자주 들르고 싶은 곳이다. 10월 8일, 사진동호회 설레임 회원들과 전주한옥마을에 다녀왔다.

전주시청 홈페이지(http://www.jeonju.go.kr)에 전주지명의 유래가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 있다.

〈전주(全州)의 옛 지명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백제시대에는 완산이라 하였는데 마한국명으로는 원지국에 이른다. 전주라는 지명 사용은 서기 757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경덕왕16년부터이다. 전주 완산의 비명 원의를 볼 때 "완(完)"과 "전(全)"은 모두 "온전하다"는 "온"이란 우리말 뜻을 지닌 글자이다. 따라서 "완"은 그 음도 "온"의 근사음으로서 "완"이란 글자는 "온"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은 1930년 전후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완산구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한옥촌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전통 한옥 700여 채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한옥마을을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곡선의 기와와 처마 등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현장이라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판소리 등 전통 공연 관람, 전통 공예품이나 명품 감상, 막걸리나 청주의 제조과정 관람과 시음, 숙박하면서 한옥의 장점 체험 등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크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사적 339호),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인 풍남문(보물 제308호), 1914년에 준공된 서양식 근대건축물 전동성당(사적 제288호),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가 연회를 열었던 오목대, 대성전·명륜당 등 16동의 건물로 이뤄진 전주향교(사적 제379호), 조선 고종 때 영릉참봉을 지낸 인재 백낙중의 옛 집으로 전주 한옥의 대표적 건물인 학인당(민속자료 제8호)이 가까이에서 이웃하고 있다.


풍남문(보물 제308호)을 둘러보면 전주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주는 지방행정의 중심지를 둘러쌓았던 읍성이 있던 곳이고, 조선중기의 건축물인 풍남문은 옛 전주읍성의 남문이다. 문루의 편액에 '호남제일성'이 써있는 풍남문에 대해 문화재청 홈페이지(http://www.cha.go.kr) 문화유산정보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豊南門)'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출입문의 천정에 그려진 사신도를 구경하며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에 대해 배우는 것도 좋다. 풍남문은 남쪽의 문이라 남방을 지킨다는 상상의 동물로 봉황을 닮은 주작이 그려져 있다.


풍남문에서 가까운 한옥마을 입구에 '순교터' 표석이 이곳이 성지임을 알리는 전동성당(사적 제288호)이 있다. 전동성당은 천주교도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주춧돌을 세워 1914년에 준공되었다. 붉은 벽돌의 호남 최초 로마네스크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로 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고, 내부 천장은 아치형으로 곡선미를 살렸다. 천주교인들의 성지순례 장소라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전동성당 길 건너편에 위치한 경기전(사적 제339호)은 조선을 건국한 후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길가의 입구에서 두 마리의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특이한 모습의 하마비(下馬碑)를 만난다. 하마비에 '이곳에 이르면 신분이나 계급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려야하고, 잡인들은 출입을 하지 말라'는 뜻을 지닌 '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 새겨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유산정보에 경기전이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 있다.

〈태종은 1410년 전주ㆍ경주ㆍ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흥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ㆍ헌ㆍ익랑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고목들에 둘러싸여 있는 경기전은 주요 건물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뒤편의 어진박물관에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제931호)이 봉안되어 있다. 남동쪽 담장 부근에는 완주 태봉산에서 1970년 이곳으로 옮겨온 예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가 있다.


혼불의 배경 지역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에는 ‘혼불문학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는 ‘최명희문학관’이 있다.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갑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밟히는 혼불 작가 최명희문학관 독락재(獨樂齋)의 작고 아담한 공간에서 혼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만나는 국제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은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제 맛이 나고 머문 시간만큼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비슷한 풍경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골목마다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삶이 새로운 것들을 보여준다. 부채문화관, 한방문화센터, 공예품전시관, 전통한지원, 전통술박물관, 공예명인관, 소리문화관 등을 둘러보면 여러 가지를 체험할 수 있다.




오목대는 경기전에서 동남쪽으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언덕이다. 평평한 정상은 1380년에 남원의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이성계가 승전 잔치를 베푼 곳이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후 정자를 짓고 이름을 오목대(梧木臺)라 했으며 고종의 친필인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 비문이 있다. 산책로 계단을 따라 오목대에 오르면 기와지붕이 가지런히 들어선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한벽당(전북유형문화재 제15호)은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찾았던 누각이다.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문신 최담의 별장으로 지은 것이다. 전주팔경의 하나인 한벽청연(寒碧晴烟)은 한벽루와 어우러지는 맑고 푸른 전주천의 아침 물안개와 낮게 깔리는 저녁노을의 빼어난 풍광을 가리킨다. 이목대에서 한벽루 가는 길가의 언덕에 벽화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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