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청주행복산악회원들이 주왕의 전설이 서린 주왕산과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 주산지에 다녀왔다.
주왕산(周王山)은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있는 명승 제11호로 높지도 크지도 않은 봉우리와 계곡들이 조물주가 정성껏 빚은 예술작품처럼 경이로운 절경을 연출한다. 주왕산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이하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택리지를 저술한 이중환은 ‘청송 주방산(주왕산)은 골이 모두 돌로 이루어져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샘과 폭포도 지극히 아름답다.’, 조선 후기의 문인 홍여방은 ‘산세는 기복이 있어서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범이 웅크린 것도 같으며, 냇물은 서리고 돌아 마치 가려 하다가 다시 오는 것 같다.’고 칭송했단다.
국립공원 중 면적이 가장 좁고 해발 720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주위에 해발 6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石屛山)이나 주방산(周房山)으로도 불렸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진나라에서 주왕이 이곳으로 피신 왔다고 해서 붙인 것으로 산봉우리,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다. 신라 때 선덕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추대되었던 김주원도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쫓겨 이곳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주왕산에 관한 글들이 많은데 두산백과에 소개된 아래의 글이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다.
‘주요 명소로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한 고찰 대전사를 비롯해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백련암,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치렀다는 기암,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 동해가 바라보이는 왕거암, 주왕이 숨어 살다가 죽었다는 주왕굴 등이 꼽힌다. 그밖에 자하성(주방산성),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연화굴 등의 명소가 있다. 연꽃 모양의 연화봉과 만화봉,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아침 7시 용암동에서 출발한 관광버스가 시내를 돌며 회원들을 태운다. 이틀째 가을비가 내려 산행하기 나쁜 날씨지만 산과 행복산악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37명이 함께했다. 중부고속도로 서청주IC를 들어선 관광버스가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휴게소와 안동 시내를 지난다. 청주에서 먼 거리인데다 많은 시간을 구불구불 국도와 지방도를 달려야 하는 곳이라 11시경이 돼서야 주왕산국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굵어진 빗방울이 산행을 시샘한다. 등산로를 따라 주왕산 정상과 3개의 폭포를 돌아보는 산행계획이 궂은 날씨 때문에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대전사에서 용연폭포에 이르는 계곡만 트레킹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주차장에서 매표소가 있는 대전사까지 형형색색의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은 관광객들이 늘어섰다. 대전사는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인 672년 의상이 세웠다거나 고려 태조 때인 919년 눌옹이 창건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온다. 부속 암자로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대전사 뒤편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고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매끄러운 봉우리가 주왕산 산세의 특이함을 대표하는 기암이다. 대전사 옆 개울 건너편에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백련암이 있다.
대전사를 출발해 처음 만나는 것이 아들바위다. 바위를 등진 채 돌아서서 다리를 벌리고 왼손에 든 돌을 가랑이 사이로 던져 둥그런 모양의 아들바위 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단다. 남아선호 사상이 만들어낸 풍속이지만 바위 위에 작은 돌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것으로 봐 이곳에서 소원을 간절하게 빌은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높은 산에 있던 단풍행렬이 계곡 아래로 내려왔다.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는 급수대, 시루떡 모습이라지만 사람의 얼굴을 닮은 시루봉,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는 학소대 주변을 오색단풍이 알록달록 물들였다.
학소대 위쪽에서 한 폭의 산수화처럼 절경을 빚어내는 3개의 폭포가 주왕산국립공원의 핵심이다. 대전사에서 2㎞ 지점의 기암협곡과 암벽이 만든 문을 통과하면 사면이 바위로 둘러싸인 소에 물이 쏟아지는 용추폭포를 만난다. 규모는 작으나 폭포 주변의 풍경과 1단과 2단 폭포 아래의 선녀탕과 구룡소를 돌아 나온 계곡물이 포말을 내뿜으며 돌허리를 타고 내려와 소를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다.
용추폭포 위쪽으로 올라가면 좁은 개울에 단풍이 절정이다. 800여m 지점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200m 거리에 아담하게 두 줄기로 이루어진 절구폭포, 왼쪽으로 400m 거리에 2단의 물줄기가 웅장하고 거대한 용연폭포가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이라 폭포의 물줄기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부지런히 돌아봤는데도 약속시간이 한참 지난 뒤 주왕산 입구의 식당에 도착했다. 몇 번씩 술을 따라주며 살갑게 대해주는 회원들이 비에 젖은 몸을 녹여줬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만큼 정을 많이 나눈 점심을 먹고 주산지로 향했다.
주산지는 주왕산에서 영덕방면으로 가다 만나는 300여년의 세월을 담은 농업용 저수지이다.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분위기가 아늑한 조그만 산중 호수로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이 인생의 비밀을 사계절에 담은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고, 기온차가 큰 날 새벽에는 사진가들이 물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풍경을 담으려고 즐겨 찾는 출사지이다.
주산지는 주차장에서 15분쯤 걸어가야 만나는데 개인적인 주관에 의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신록이 눈부신 봄은 봄대로 단풍이 우거진 가을은 가을대로 사계절 독특한 멋을 풍긴다. 저수지에 도착하면 둑 옆에 축조 당시 유공자들의 이름과 공사 기간에 관한 기록이 새겨진 작은 비석이 서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자태를 한껏 뽐내며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나뭇잎들이 수면을 붉게 물들였다.
이날 한 손에 우산을 들은 채 렌즈에 묻은 빗방울 닦아내랴, 초점 맞추랴, 구도 잡으랴, 조리개 조절하랴 고생했지만 일부 회원들에게 오색 단풍을 듬뿍 담은 멋진 추억을 선물할 수 있어 즐거웠다.
3시 20분경 청주로 향한 관광버스가 34번 국도 예천신공항휴게소와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에 들르며 7시 50분경 최종 목적지인 용암동에 도착했다. 처음이지만 마음이 맞는 남자 4명은 집근처의 식당에서 여러 번 술잔을 기울이며 뒤풀이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