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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엄홍길 만나는 거류산 산행하고 동피랑마을로

11월 2일, 직지산악회원들이 초입에서 엄홍길전시관을 만나는 거류산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주룩주룩 제법 가을비가 많이 내리는 궂은 날씨였다. 작은 우리나라의 날씨도 가끔은 천차만별이다. 산행을 하고 싶어 기상청예보를 보니 경기도 이북지역과 여수에서 부산에 이르는 남해바닷가는 날씨가 맑았다. 마침 직지산악회원들이 고성의 거류산으로 산행을 떠난다기에 동참하기로 했다.

아침 7시 10분 청주공설운동장 앞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남쪽의 고성으로 향한다. 산행 떠나기 나쁜 날씨인데도 빈자리가 많지 않다. 차안의 분위기는 창밖의 날씨와 다르게 화기애애하다.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다름을 설명하며 산을 좋아하고 직지산악회를 사랑하는 회원들에게 감사하다는 국화 회장님의 인사말도 듣는다.

고속도로가 사방을 연결하며는 세상을 가깝게 만들었다.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인삼랜드휴게소와 산청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려온 관광버스가 왼쪽의 거류산을 보며 동고성ic를 빠져나온다. 10시 35분경 엄홍길전시관 주차장에 도착해 짐을 꾸리고 산행을 시작한다.


거류산(높이 570.5m)은 당동만과 당항포만으로 둘러싸여 있고 들판 너머로 삼각뿔처럼 우뚝 솟은 산의 모습 때문에 일명 ‘한국의 마터호른’으로 불린다. 옛날 어떤 아낙이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서 소리치자 그 자리에 멈췄다는 전설이 재미있다. 거류산(巨流山)이라는 지명은 걸어가던 산이라고 해서 걸어산이나 거리산이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초입의 등산로는 한참동안 된비알이 이어져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려야 한다. 철계단을 여러 번 오르내리며 산길을 오르다 보면 당동리의 다랭이논과 당동만, 당항포국민관광지가 위치한 당항만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바위가 많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앉아 들판과 산, 바다와 섬이 이어지는 남해의 풍광을 감상한다.


거류산은 특별한 풍경이 없는 평범한 산이지만 정상으로 향하는 내내 기암과 소나무가 이어지고, 먼 바다가 가깝게 바라보일 만큼 조망이 좋으며,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산성이 있어 명산으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한동안 이어지는 호젓한 산길을 걸어 당동고갯길을 넘어서면 왜적의 침입을 막았던 거류산성이 눈앞에 나타난다.


거류산성(경남문화재자료 제90호)은 거류산 정상부에서 서쪽 경사면을 성내로 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소가야에서 신라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성이라 전해지고, 1400m에 이르는 성벽은 대부분 훼손되고 현재 둘레 600m, 높이 3m, 폭 4m 정도만 남아있다.

산성의 성벽에 올라서면 이순신 장군이 1592년과 1594년 두 차례에 걸쳐 왜선 56척을 전멸시킨 당항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벗하며 오징어 묻힘, 오리훈제 등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점심을 먹었다. 국화 회장의 말처럼 이렇게 좋은 식탁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나. 땀 흘리고 먹는 점심은 산행의 고생을 몇 배로 보상할 만큼 모든 게 꿀맛이다. 직지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8년이나 앞선 우리 조상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직지를 앞에 내세운 산악회답게 산행에 처음 참석한 사람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의미있게 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상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말한다.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정상이 있어 얕볼 수 없다. 사람마다 정상에 오르는 이유가 다를 것이다. 나는 산행하는 동안 마음의 대화를 하며 산처럼 큰 포용력을 배운다. 또한 어떤 일이든 ‘나도’ 다른 사람처럼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주변을 조망하기에 거침이 없다.





정상을 넘어서면 바로 아래편에서 거북바위가 맞이한다. 거북바위는 산의 동쪽 끝자락에 올록볼록 솟은 두개의 암봉으로 거북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거북바위라고 부른다. 작은 봉이 거북의 머리이고, 큰 봉은 거북의 등으로 남해에서 올라와 산 위에 넙죽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하산 길은 조망이 없고 너덜지대가 자주 나타나 지루하지만 원시림을 닮은 숲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좁은 산길에 여럿이 줄을 서서 걷는 풍경이나 낙엽 밟을 때 발밑에서 나는 “사그락사그락, 자박자박” 소리가 정겹다. 산모롱이를 돌아설 때마다 남해에서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으로 들어와 청량제처럼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산행을 마치고 거류산 초입에 있는 엄홍길전시관에 도착했다. 엄홍길전시관은 인류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를 완등한 산악인 엄홍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7년 10월 처음 문을 열었다. 이곳 고성에서 태어난 히말라야 영웅 엄홍길의 일생과 1985년부터 23년 동안 히말라야 8000m 16좌를 모두 완등하기까지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

전시관을 둘러보며 1924년 앤드류 어빙과 에베레스트에 맨 처음으로 등정을 시도하다 정상 600m를 남기고 실종된 후 75년이 지나서야 정상 부근에서 시신이 발견된 영국의 산악인 조지말로리가 1923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하느냐?(Why climb Everest?)"는 질문에 "(산이)거기에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짤막하게 대답한 이 말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유행어가 된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3시 35분 통영으로 향한 관광버스가 4시 10분경 통영항에 도착한다. 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통제사가 머물며 전라, 경상, 충청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영이 있던 곳으로 한려수도의 비경 때문에 한국의 나폴리로 불린다. 통영항의 중앙시장은 신선하고 싱싱한 활어회로 유명하고 벽화 마을로 널리 알려진 동피랑마을과 세계 유명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남망산조각공원이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1시간 동안의 자유 시간을 이용해 동피랑마을의 벽화를 구경했다. 동쪽 벼랑을 뜻하는 동피랑마을은 중앙시장 뒤편 언덕에서 남망산조각공원과 마주보고 있다. 동피랑마을은한국의 몽마르뜨 언덕으로 불리며 고창의 돋음볕마을과 함께 우리나라 벽화마을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담벼락에 형형색색의 벽화가 그려있다.

허름했던 달동네 동피랑마을은 조선시대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로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낙후된 마을이라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한 시민단체가 달동네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며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고,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벽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통영시도 동피랑마을의 철거방침을 철회하였다.

동피랑마을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정감이 간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좁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야트막한 굴뚝이 지붕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바닷바람에 펄럭인다. 이곳에서는 무너진 담장과 녹슨 창살도 예쁜 벽화와 어우러지며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눈길을 돌리면 골목 앞으로 통영 바다가 펼쳐진다.

5시 10분 통영항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동영대전고속도로를 달려 단성IC 입구의 성화식당에 도착한다. 어느 곳이든 사람 사귈 때는 술이 최고다. 첫 만남인데도 살갑게 대해주는 산악회원들과 방금 통영항에서 떠온 싱싱한 회와 지리산 흑돼지 석쇠불고기를 안주로 술잔을 여러 번 비웠다. 9시 30분경 최종 목적지인 청주공설운동장 앞에 도착할 때까지 국화 회장님과 첫 산행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하며 직지산악회에 대한 정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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