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노란 은행잎, 부풀어 오른 억새, 울긋불긋한 옻나무 잎과 담쟁이덩굴이 짙어가는 가을을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불러낸다.
손편지를 언제 써 보았을까? 육필로 쓴 편지는 마음과 숨결이 손끝은 통하여 종이에 그대로 전달되어 읽는 이에게 사뭇 감동을 주게 마련이다.
꽃잎 흩날릴 때 쓰는 편지는 따스함과 분홍빛 그리움이 편지지에 물들어 읽다. 그리고 빈 들, 자욱한 아침 안개, 길어지는 산 그림자를 보면서 쓰는 가을 편지는 소슬함과 더불어 서걱거리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손편지 쓰기! 디지털기기의 발전과 바쁜 일상은 속도를 승부로 삼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과 바래지는 풀빛을 보며 그리운 이에게 손편지를 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스마트폰의 페이스북, 카톡, 문자메시지 기능을 활용하여 사진과 사연을 간단히 적어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공개되는 순간 ‘좋아요’라는 횟수가 공감지수로 표현된다. 너무 빠르다. 느낌과 감동은 잔잔히 시간을 타고 우리의 토속적 발효음식처럼 사유의 되새김을 거쳐야 진면목이 나타나는데 빨리 끓고 식어버리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편리함과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길거리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도 외면하게 하였다. 거리 곳곳마다 서 있는 빨간 우체통. 어릴 적 생각해 본 우체통의 신비는 어떻게 편지를 보내면 받는 사람에게 갈까? 땅속으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체통도 사용자 수가 적고 유지보수 비용이 든다고 많이 철거됐다. 가끔 길거리를 가다 가물에 콩 나듯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을 볼 때마다 희로애락을 간직한 채 묵묵히 기다린 시간의 주인공이고 바로 너라고 일러주고 싶다.
우체통과 함께 많이 사라진 것이 있다면 소식을 전하기 위한 공중전화이다. 길거리에 흔히 보이던 공중전화 부스도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우산도 없이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그을 수 있는 곳이 부스였으며 그 속에서는 사랑도 피어올라 그리움이 차가운 전선을 타고 분홍빛으로 전달되기도 하였다.
편지, 우체통과 더불어 떠오르는 사람은 우체부 아저씨다. 모자를 쓰고 비둘기가 그려진 큰 가방을 메고 골목골목 발품을 달아 우편물을 배달하다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등장한 것이 빨간 오토바이였다.
바람소리도 파도소리도 쉬어가는 작은 시골학교에서 오전 중 오토바이 소리가 나서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언제나 빨간색인 우체부 아저씨이다. 좋은 소식, 슬픈 소식, 고지서와 홍보 우편물을 잔뜩 싣고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의 발효 창고를 들고 다니는 따스한 분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편지가 그리울까? 까까머리 학생이 제일 보내고 싶은 편지가 여학생에게 보내는 편지였으며 제일 싫은 편지가 성적표를 담은 편지였다.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밤을 새워 쓰고 찢기를 반복하여 완성한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순간 그 두근거림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다 답장이라도 받으면 마음은 구름을 밟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성적표를 보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날은 맑은 날이어도 언제나 기분은 어수선하기만 하고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손편지! 참 좋은 말이다. 지금은 몇 자 되지 않는 내용도 규격화된 문서작성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보내면 그만이다. 모든 내용이 정형화된 글꼴과 크기 속에 박재되어 있는 미이라 같다. 아마 빨간 비둘기 로고가 그려진 오토바이의 우편물 속에도 인쇄된 우편물이 대부분일 것이다. 과연 그 속에 손으로 꾹꾹 눌러쓴 온기가 돌고 있는 우편물이 얼마나 있을까?
빠름과 정확함을 강조하는 시대지만 그래도 초성 중성 종성 횡간을 맞추어 써 내려가는 손편지의 묘미는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생각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찬바람이 부는 아침. 십 오년을 족히 넘긴 다이얼을 돌릴 때마다 찌직 거림이 더해지는 버튼식 아날로그형 카세트 라디오에서 고은 시인이 쓴 가을편지가 그리움을 더해주고 있다. 빨간 우체통, 우표, 시외전화기와 교환원이 있었던 우체국이 그리운 상념으로 다가온다. 그래 오늘은 스마트폰의 밴드도 페이스북도 카톡도 절대 쳐다보지 않고 찬바람에 시려진 마음 늦가을 태양 빛으로 따스하게 데워서 그리운 이에게 한 줄의 손 편지를 꾹꾹 눌러 적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