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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그때 그 선생님의 편지 한 통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어제 일입니다. 퇴근 후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 갔습니다.
"장선생, 나 김선배인데....."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자주 연락도 드리지 못하고..."
"아니야,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연락했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가 먼저 연락드려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장성에 자주 가지 않아서 얼굴을 못 본지가 좀 되었지? 부디, 건강하시게!"

45년 전 중학교 3학년 시절 은사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제자를 걱정하는 마음이셨습니다. 이제는 칠순을 훌쩍 넘어 팔순을 바라보실 은사님의 따스한 걱정은 마치 부모님 목소리 같아서 울컥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은사님을 잊고 산 몇 년이 죄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어디선가 함께 늙어가는 제자를 따듯한 눈빛으로 염려하고 바라보아 주는 분이 계시다는 든든함!

은사님은 정식 증학교 대신 검정고시를 치러야했던 고등공민학교에서 자원봉사처럼 매우 낮은 보수를 받으시며 가난한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시던 분이었습니다. 자료도 빈곤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신문을 스크랩해서 만든 자료를 가져 오시기도 했고 세계적인 명화가 실린 책을 보여주시며 수업을 해주셨던 분이었습니다. 칠판 글씨는 얼마나 정갈하신지. 지금의 제 필체는 선생님의 글씨를 따라 배우며 연습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3학년을 마치기 힘들게 되어 학업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서려던 저에게 선생님은 몇 장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이미 다른 직장을 찾아 서울로 떠나셨던 선생님께서 제 소식을 듣고 인생의 선배로서 진솔하고 따스한 염려를 담아 보낸 편지는 나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명필이셨던 선생님이 정성 들여 쓴 편지는 여러 번 이사하는 와중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인생의 보물과 같은 편지를!

그러나 그분이 전하고자 했던 주제만큼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옥순이 네가 처한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고 아프구나. 검정고시를 치르지 않으면 3년 동안 다닌 학교 수업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고등학교를 갈 형편도 안 되고 부모님조차 많이 아프시니 네가 일해야 한다는 사실도 참 아프구나. 그러나 네 인생에서 지금 만큼 소중한 순간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석 달만 참으면 검정고시인데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는다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해서든지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고등학교를 못 가더라도 언젠가 기회가 오면, 네가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이니 꼭 계속하는 날이 올 거라 확신한다.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기 바란다. 나도 학교 측에 연락하여 네가 시험을 보고 졸업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볼 테니 조금만 참고 공부를 다시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15살 중학교 3학년 학생이면서 집안의 가장과 다름 없었던 나의 삶은 생존 그 자체만으로 벅찼던 시간이었습니다. 공부나 학교보다는 가족의 생계가 더 급했던 그 시절. 내게 공부는 사치스러운 단어였기에 검정고시도 고등학교도 다 던지려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간곡한 편지를 받아들고 흘렸던 감동의 눈물은 아직도 남아서 이 글을 쓰는 순간 다시 먹먹해집니다.

은사님 덕분에 나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석달을 버티고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5년의 주경야독 끝에 다시 고졸 검정고시를 치르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가족을 책임지는 딸로서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공부에 목마르고 절실했던 만큼 여러 일자리(비정규직)를 전전하면서도 혼자 하는 공부를 이어갈 힘을, 자생력을 길러주신 내 인생의 은사님을 추억하며 나는 아프고 힘든 아이들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잘하는 것이 은사님이 내게 베푼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길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세상이 참 아픕니다. 밥은 먹어도 밥을 먹지 못하던 시절보다 사람들의 가슴은 더 허허롭습니다. 갑질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짓밟고 무시하며 이죽거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입니다. 45년 전 은사님의 전화 한 통은 매너리즘에 빠진 제자를 다시 일깨우는 죽비가 되어 두드리고 지나갔습니다. 지금 내 곁에서 아프고 힘든 아이들이 오래 전 내 모습임을 한시도 잊지 말라고! 내 인생의 영원한 스승, 김선배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강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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