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것은 우리집 수준이 아니잖아?”
얼마 전, 서울에서 자취하는 대학생인 딸이 집에 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모집을 방문한다. 우리 딸이 우리집 거실에 놓여 있는 새로 구입한 오디오를 보고 한 말이다. 그 전까지는 그 자리에 빨간색 FM 카세트 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늘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카세트 라디오가 익숙해서 그런가? 아니다.
딸이 무심코 자연스럽게 내뱉은 말의 의미를 분석해 본다. 우선 그렇게 비싼 물건을, 그것도 수입오디오를 구입한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것이다. 보통 가정용 라디오는 10만원 미만이다. 그러나 오디오는 그 보다 몇 배 비싸다. 필자가 구입한 것은 정가가 60만원 정도인데 전시상품을 44만원 주고 구입했다.
그러니까 딸은 아빠의 물건 구입 행태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이왕이면 저렴한 것으로, 그리고 국산품을 구입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의 물건 구입 행태가 바뀐 것이다. 그렇게 변하게 된 속내용까지는 묻지 않는다. 그러나 딸이 보기에 이번 오디오 구입은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동안 사용한 라디오는 10년 정도 사용했더니 성능이 수명을 다했다. 우선 안테나가 전파를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칙칙거려 방송상태가 깨끗하지 못하다. 채널을 손으로 돌리는데 원하는 방송을 찾기가 어렵다. 볼륨에도 이상이 있는지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아마도 접착에 이상이 있는가 보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이제 퇴직에 대비해야 한다. 퇴직 후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하지만 아무래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집에서 취미활동도 하지만 라디오 청취시간도 늘어난다. 이번 오디오 구입은 그것을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아마도 딸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집에는 총각 때부터 사용한 클래식 LP 음반 150여장, 녹음 카세트테이프가 100여개 있다. 그리고 음악 CD도 여러 개 있다. 그러나 결혼 후 바쁜 직장생활에 그것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총각 때 용돈을 아껴모아 구입한 별표 전축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턴테이블 바늘을 고장내니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100볼트용이라 사용하기 불편해 버리고 말았다. 음악 CD는 뜯지않은 포장 상태 그대로다.
오디오로 음악 방송을 들으니 그 음질 상태가 익숙하지 않다. 아마도 카세트 라디오 방송에 익숙해졌었기 때문이다. 스피커가 별도로 떨어진 오디오 음악을 들은 지 이 십 년이 넘었다. 이제 좀 있으면 오디오가 익숙해지고 리모콘으로 메모리된 채널을 활용해 편하게 음악을 즐기게 될 것이다. 음악 CD도 즐기는 여유 시간을 가질 것이다.
딸이 우리집 수준을 낮게 보아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부부 교원이니 수입만 따져도 우리나라 중류층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처럼 1950년대에 태어나 1960년대 어려운 생활을 한 세대는 근검절약이 습관화되어 있다. 돈은 있어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저축을 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려 한다.
지금 딸의 눈에 보이는 아빠의 잠옷과 반바지만 보아도 그렇다. 20년이 넘은 잠옷은 팔꿈치에 구멍이 났다. 흰색 반바지는 엉덩이가 닳아 두 군데나 찢어졌다. 모두 다 버려야 할 물건이다. 빨리 버려야 하지만 무엇이 아까운지 지금껏 보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쓰지 않는 물건이 집안에 쌓여 있는 것이다.
필자는 가정교육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가정교육은 가정에서 부모에게 자녀를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언어로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해야 하고, 어떤 것은 해서는 안 되고 하는 것을 훈계로써 되지 않는다. 가정교육은 보이지 않게 이루어진다. 바로 부모의 본보기가 중요하다는 것. 자녀들은 부모의 언행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다. 이것이 살아있는 가정교육이다. 딸이 아빠에게 한 말, 이해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