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날씨가 한 몫 한다. 일기예보대로라면 동해안만 날씨가 좋다. 불현듯 울산바위에 올라 겨울철의 동해를 바라보고 싶다. 마침 청주수요힐링산악회의 토왕성폭포 산행에 따라나서면 울산바위 자유산행이 가능하다.
이상기온 때문일까. 올해는 겨울철에도 눈 보기가 어렵다. 1월 13일 아침 집을 나서는데 차위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어 기분이 좋다. 약속대로 정확히 7시 30분에 청주실내체육관 앞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강원도로 향한다. 차타는 시간이 길다보니 스쳐지나가는 풍경들도 다양하다.
중부고속도로 음성휴게소에 들르고 양덕저수지의 풍경이 뒤편으로 사라진 후 회장님의 안전산행 인사와 산대장님의 산행일정 안내가 이어진다. 정이 끈끈한 산악회는 초코파이, 마구설기, 귤, 커피 등 먹을거리를 찬조하는 사람들이 많아 입이 즐겁다. 영동고속도로 강릉휴게소에 들러 선자령 방향의 풍력발전기를 바라보고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를 달려 11시 30분경 소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흔들바위와 계조암을 거쳐 울산바위까지 약 3.8㎞는 편도 2시간 거리다. 차에서 내려 짐을 꾸리고 산행을 시작한다. 설악산 매표소와 입구의 반달곰 동상을 지나면 왼쪽이 45년 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토왕성폭포 가는 길이다.
케이블카로 오가는 권금성 방향,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을 알리는 표석, 멋들어진 금강소나무, 산악인의 불꽃 추모비를 구경하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민족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높이 14.6m의 통일대불 왼쪽 뒤편으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신흥교에서 황철봉과 울산바위 주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건너편의 신흥사로 간다.
신흥사는 속초시 설악동(雪嶽洞)에 있는 사찰로 당나라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한 자장율사가 652년 향성사로 창건하였다. 설악켄싱턴스타호텔 자리에 있던 향성사가 하루아침에 소실된 후 의상이 지금의 내원암 터에 다시 지은 선정사도 천여 년 간 번창하다 소실되었다. 이것을 가슴 아파하던 세 승려가 똑같이 향성사 옛터 뒤에 절을 지으면 삼재(三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신의 계시로 창건한 사찰이라 신흥사(神興寺)라 부른다.
중요문화재로 설악켄싱턴스타호텔 앞에 있는 향성사지삼층석탑(보물 제443호)을 비롯해 극락보전(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호),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3호), 경판(강원도유형문화재 제15호), 보제루(강원도유형문화재 제104호), 부도전(강원도문화재자료 제115호)이 있다.
신흥사를 벗어나자 산에서 바람이 불어와 낙엽들이 재처럼 하늘에서 춤추게 한다. 200여m 거리의 안양암은 작은 암자로 법당의 기둥에 한글로 ‘여래의 한량없는 그 모습 모든 중생들 안락케 하는 캄캄한 번뇌 없애버리고 온갖 것 두루두루 비치며’라는 글이 걸려있다. 오른쪽 뒤편으로 달마대사의 모습처럼 둥글게 생겼다는 달마봉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
신흥사와 울산바위의 중간쯤에서 작고 초라한 내원암을 만난다. 내원암은 신흥사의 전신 선정사의 옛터에 위치한 부속암자로 역사가 깊다. 산길 가까이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고 세력이 다한 듯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그냥 지나치는 게 안타깝다. 그나마 설악동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이 토왕성폭포로 몰려가 푸른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산길에서 여유를 누린다.
내원암을 지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나타나던 울산바위가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목탁바위를 뚫고 석굴사원으로 지은 계조암이 있다. 계조암은 652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석굴 앞 쌍룡바위가 대문 역할을 하고, 식당암은 소가 누운 모양의 반석으로 백여 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평하다.
석굴 안의 아미타불과 삼성각의 나반존자상은 기도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목탁 속에 들어있어 다른 절보다 일찍 공부를 끝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조사(祖師)의 칭호를 얻을 만큼 법력이 높은 승려들을 계속 배출하여 계조암(繼祖庵)으로 불린다고 한다.
밀면 흔들리지만 떨어지지는 않는 바위가 흔들바위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흔들바위가 계조암 앞에 있다. 설악동탐방지원센터에서 2.8㎞ 거리에 있는 이곳의 흔들바위는 와우암의 머리 부분에 있는 우각석(쇠뿔바위)으로 신기하게 크고 둥근 바위를 한 사람이 밀든 백 사람이 밀든 움직이는 정도가 같다. 흔들바위는 원래 쇠뿔처럼 2개였는데 풍수지리가가 불가의 영기가 넘쳐흐름을 시기하여 1개를 굴려 떨어뜨렸다고 전해온다.
울산바위는 흔들바위 바로 뒤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1㎞ 거리에 있다. 흔들바위 뒤편의 울산바위 전망대에 오르면 좌우로 길게 펼쳐진 높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의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들도 멋지다. 전망대를 지나 정상을 600여m 남긴 지점부터는 제법 힘이 들어 발걸음이 느리다.
속초에서 설악산 방향을 바라보면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설악산 북쪽의 울산바위는 2013년 명승 제100호로 지정된 암봉으로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과 고성군 토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있다. 울산바위는 설악산의 풍경을 대표하는 높이 873m의 수직암릉에 둘레가 4㎞에 이르는 6개의 거대한 봉우리 정상부에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 5개 있다.
울산바위의 명칭 울산(蔚山)은 기이한 봉우리들이 울타리를 설치한 모습과 같은 것이나 경남 울산에 있던 바위가 금강산에서 열린 경승 심사에 급히 올라가다 지각하여 이곳에 눌러앉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고지도의 천후산(天吼山)이 바위가 많은 산에서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을 하늘이 울고 있는 것에 비유한 것처럼 정상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바람이 세게 불어 동해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내려올 때는 발걸음이 빨랐지만 멋진 풍경에 빠진 시간이 길어 약속시간 3분 전인 3시 27분 마지막 산행자로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전국에 눈이 오는 곳이 많다는데 오히려 북쪽의 설악산 하늘은 봄 같은 날씨다. 그래도 계절을 거역할 수 없다. 주차장에서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안주로 뒤풀이를 하던 회원들이 찬바람이 불어오자 몸을 웅크리고 차안으로 들어간다.
일행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왔던 길을 되짚어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와 중부고속도로 음성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려 8시 10분경 청주체육관 앞에 도착할 때까지 눈비를 뿌렸다. 청주수요힐링산악회와 첫 산행이었지만 억양에 인정이 듬뿍 들어있는 회장님을 만나고 안면이 있는 분과 같은 자리에 앉아 대화도 많이 나눈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