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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좌우 바뀐 한반도지형과 금강 물줄기

지난 25일 아내와 옥천지역의 금강줄기와 대청호를 보기위해 옥천군 안남면으로 차를 몰았다. 자연환경만큼이나 우리의 역사도 중요하다. 둔주봉으로 가며 처음 들른 곳이 안남면 도농리의 표충사와 중봉 조헌의 묘소다. 


중봉 조헌(1544∼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영규대사의 승병과 합세하여 청주읍성을 수복하는 등 왜병들을 막아내다 금산전투에서 700의병과 함께 장렬히 순국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고려의 우탁에 이어 도끼를 들고 상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임금이나 고관의 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둔 것이 신도비다. 중봉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최후의 격전지였던 금산싸움이 자세히 적혀있는 길가의 중봉 조헌 신도비(충북유형문화재 제183)를 보고 150여m 거리에 있는 표충사로 간다.

표충사의 대문인 삼문은 충의문으로 가운데 문이 높고 양쪽의 문이 낮은 솟을삼문 형태를 갖추고 있다. 삼문에 들어서면 주병덕 전 충북지사가 쓴 '표충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 중봉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표충사와 영모제 사이로 연결된 돌계단을 60여m 오르면 중봉의 묘소(충북기념물 제14호)다. 묘소는 낙락장송들이 에워싸고 있는 언덕 위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암 송시열이 중봉의 공적을 기록한 비석과 문인석이 서 있는 묘소에서 표충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둔주봉에 오르기 전 안남면 소재지를 지나면 연주리의 독락정(충북문화재자료 제23호)에 도착한다. 독락정은 절충장군중추부사를 지낸 주몽득이 1607년에 세운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처음에는 정자로 지었지만 후에 유생들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서원 구실을 하였다.

정자에 1668년 당시 군수였던 심후의 ‘독락정(獨樂亭)’ 현판이 걸려 있고, 뒤쪽의 둔주봉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솟아 있으며, 앞쪽의 물줄기와 산줄기가 용이 춤을 추며 승천하는 형상이라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독락정 앞 냇가에서 물길 건너편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둔주봉에 오르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좌우가 바뀐 한반도지형이 바로 독락정 앞 물길이 만든 풍경이다.




주변의 환경을 쉽게 이해하려면 지도에서 둔주봉과 대청호까지 이어진 S자 물줄기를 살펴봐야 한다. 독락정 뒤편의 둔주봉은 강원도 영월의 선암마을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지형과 동서가 바뀐 지형이 조망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초입인 안남초등학교 정문에서 거리가 가깝고 산세가 완만해 산책하듯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점촌고개에서 솔향기가 물씬 풍겨 운치가 있는 소나무 숲길을 걸어 팔각정자 전망대로 간다. 이곳이 동서가 바뀐 한반도 지형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촬영 장소다.

아래를 바라보면 U자를 만들며 휘돌아나가는 금강의 물길이 경상도와 강원도가 왼쪽, 전라도와 충청도가 오른쪽에 위치한 한반도 지도를 만든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건축된 정자는 물굽이와 한반도 지형이 만든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하기에 좋은 쉼터다.

정자에서 가파른 산길을 800여m쯤 더 오르면 둔주봉(해발 384m) 정상이다. 정상은 물길에서 높이 솟아올라 삼국시대 둘레 약 150m의 산성이 있을 만큼 조망이 좋다. 서쪽을 바라보면 오대리, 장계리, 막지리, 석호리, 용호리로 이어지는 S자 물줄기와 산봉우리들이 다 내려다보인다. 다만 정상 표석에는 '등주봉'·바로 아래편의 표석에는 '둔주봉산성', 지도에는 '둔주봉', 이정표에는 '둔주봉'과 '등주봉'이 같이 써있는 것은 흠이다.


둔주봉에서 내려와 안내면 소재지를 지나쳐 502번 지방도를 달린다. 답양리 양지골에서 군북면 막지리 가는 산길은 차도 힘들어한다. 막지리 가기 전에 고개 아래에서 물길 건너편의 석호리 도래비골과 무넘이골을 바라보고 있는 장고개마을로 갔다.

장고개마을은 돌담, 건조실 등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사진 동호회원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청주팔백리회원들과 이곳을 찾았을 때 마을주민 전세봉씨가 수몰되기 전의 막지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었다. 막지리는 금강을 따라가며 넓은 논밭이 많아 벼 수매량이 군북면 전체와 맞먹었고, 방앗간이 2곳, 가게가 4개나 되던 부촌이었으며, 마을 앞 강가에 배구장이 있는 큰 송림이 있었고, 이곳이 해마다 백중놀이가 1달간 열리는 남사당패의 집결지였다.


장고개마을에서 승용차도 간신히 통과할 만큼 폭이 좁은 도로를 남쪽 물가로 달려 마을 이름에서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풍기는 막지리에 도착했다. 지금의 막지(莫只)는 이곳을 지나던 우암 송시열이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 것을 보고 맥계(麥溪)라 이름 지은 것이 음운변화에 따라 맥기로 불리어오다 한자화하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한때는 120여 호에 750여 명이 살던 큰 마을이었으나 대청댐 수몰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수몰선 위 막지에 20여 호, 장고개에 10여 호가 마을을 새롭게 형성하며 더 이상 갈 수 없는 마지막 동네가 되었다니 과거와 현재의 간격이 크게 느껴진다. 옥천읍과 이어진 37번 국도가 가깝게 지나지만 물길이 가로막아 오지마을을 면치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장고개마을의 전세봉씨에 의하면 맥기의 풍물은 전국의 유명한 남사당패들이 다 모여들만큼 명성이 높았으며, 사물놀이패를 창단하고 해외순회공연으로 우리의 사물놀이를 세계에 알리며 국위선양에 앞장서고 있는 김덕수 단장이 태어난 곳이다. 마을 앞 강변의 모래밭과 풍물, 씨름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대한씨름협회장을 역임한 최창식씨도 이곳 출신이다.


지역을 물길로 나누다보니 작은 마을이지만 행정구역이 달라 불편한 곳이 있다. 분저리로 가며 지나는 은운리의 지경마을이 그렇다. 작은 도랑을 경계로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와 보은군 은운리 지경마을로 나뉜다. 그것도 답양리는 초입의 첫 집 달랑 한 채다.



물이 맑은 가산천을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은운리의 징게골을 만난다.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한 산골마을로 우리나라 10대 오지마을로 통하는 곳이다. 온통 산으로 뒤덮이고 구름마저도 쉬어가는 마을뒤편의 구름재를 지나다보면 강원도 정선의 하늘길이 떠오른다. 산모롱이로 모습을 보이는 대청호의 물길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고갯길을 돌아내려오면 고려 때 최영장군이 군량을 가루로 만들어 군사들에게 주었다는 분저실이 왼쪽 물가에 있는 회남면 분저리이다.


산촌에서는 고라니나 멧돼지 등 동물들이 논밭에 들어와 농작물을 파헤치는 일이 많다. 동물의 피해를 막는데 도회지에서 사용했던 현수막이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의 출입을 막는 현장은 왠지 청정 자연과 어울리지 않아 씁쓸하다.


분저리로 내려서며 아스팔트길을 만나 속도가 빨라진다. 왼쪽의 대청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물길 옆으로 난 굽잇길을 달리다 조곡리의 물가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을 바라보면 풍경이 멋진 회남면 소재지가 보인다. 현재 보이는 곳은 1980년 대청댐 수몰로 다시 조성된 삶의 터전으로 벚꽃이 만발했을 때 찾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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