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운영위원회는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가 제안한 후 3년만인 1998년 6월 모든 초,중,고 공립학교에 설치돼 운영되어 오고 있다. 준비기간이 짧았던 만큼 학운위는 그동안 많은 문제를 노출시켰다. 이제부터라도 그간의 과정에 대한 차분한 반성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고 갈등을 치유함으로써 학교운영의 민주화와 자율화에 꼭 필요한 기구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는 새 천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교장의 자문기구인 학교평의회 제도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오랜 학부모 조직과 학교운영회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제 겨우 교장의 자문 역할만 하는 학교평의회 기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그것이 주는 시사점이 있다. 1995년에 교육개혁위원회의 제안으로부터 3년만인 1998년 6월 모든 초·중·고 공립학교에 학운위가 설치되고, 2000년에는 사립학교에도 설치를 의무화한 우리의 경우와 비교해서, 아주 신중히 제도의 도입을 고려하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눈에는 이채롭기까지 하다.
일시에 모든 학교에 도입하다 보니, 농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에서는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을 구하기가 막막한 실정이었고, 도시 지역의 대규모학교에서는 그동안 제한되었던 학부모의 권리를 찾아 결과에 대한 책임과는 상관없이 요구와 주장만이 난무하는 상황도 펼쳐졌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모든 제도가 처음 도입부터 완벽한 모습을 지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많은 문제를 노출시켰던 학운위 제도를 차분히 반성해 봄으로써, 문제점을 개선하고 갈등을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학교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거듭나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일본의 그것이라고 해서 마냥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듯 우리의 것을 스스로 비하하면서 반성하려는 심정은 착한 아이에게 매를 한 대 더 주려는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우리 스스로를 바꾸어 나아가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과연 학운위가 교육자치의 꽃이 될 것인가, 아니면 교단 황폐화의 주범이 될 것인가는 이제부터의 개선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지-단위학교 책임경영 미흡 교육개혁위원회에서는 세계화·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을 위해 1995년 5월 31일에 신교육체제 수립 구상을 발표하였다. 5·31 교육개혁안은 신교육체제의 기본 특징을 학습자중심 교육, 교육의 다양화,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학교운영,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교육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학교운영’을 내세우며 기존의 획일적이고 규제 위주의 교육행정을 제도적으로 개혁하고자 하였다. 바꿔 말하면, 교개위는 이와 같은 학교운영의 현황을 ‘자치의 부족과 그로 인한 무책임성’으로 진단하고 있었으며, 학운위는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학교운영, 즉 단위학교 책임경영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로 제안되었다.
과연 학운위는 단위학교 책임경영제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단위학교 책임경영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단위학교책임경영의 원리는 ‘자율’과 ‘책임’, 그리고 ‘참여’로 규정된다(신상명, 2000). 학운위가 단위학교 책임경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되려면 이러한 세 가지 원리를 충족해야만 한다.
먼저 ‘책무성’의 측면에서 학운위를 살펴보자. 현재 학운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의 상당 부분은 구성원의 책임의식 부족과 이로 인한 학운위의 책무성 부재에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현행의 학운위가 학교의 구성주체들에 의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무조건 관철하려고 경쟁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학교공동체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나, 학운위의 위상이 불분명하여 오히려 교장의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 등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참여’의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1996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학운위는 풀뿌리 민주주의 교육자치를 표방하고, 열린교육 통치체제로서 기존의 공급자중심의 교육체제로부터 수요자중심의 교육시스템으로 변화를 주창하며 탄생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교원들은 마치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비춰졌고,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기구로 인식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수요자중심, 풀뿌리 교육자치가 전면에 등장하게 됨으로써, 이를 보는 현직 교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교육공동체를 주장하면서 교육공동체의 핵심구성원인 교원이 이렇듯 박탈감에 빠지고서는 이 제도가 성공하기 어렵다.
[PAGE BREAK]‘자율’의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기존의 육성회가 재정지원 기능만을 담당하는 기구인 반면, 학운위는 학교자치기구로서의 성격을 갖는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학운위의 도입과정에서 제기된 위원회의 기능과 이에 따른 권한의 모호성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학운위는 교육활동의 모든 참여자들이 학교운영 과정에 동참하여 학교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학교운영에 대한 논의의 장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논의 결과의 집행은 어떠한 구속력을 갖는지에 대한 측면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학교교육의 최종 책임자인 학교장의 운영권 침해라는 소리도 있고, 학운위가 학교장 중심의 자율적 학교운영 체계를 크게 위축시킨다는 주장이 많았다.
기능-불명확한 학운위 성격으로 혼란 초래 당초 교개위가 제시한 학운위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서, 사안에 따라 의결하는 기능, 심의하는 기능, 자문하는 기능 등이 그것이다. 교개위는 교원 인사에 관한 사안과 학부모가 경비를 부담하고 지원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의결기능을 부여하고, 학교운영과 교육활동 등 전문가적 소양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심의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기타 학교운영 전반에 관해 학교장을 자문하며 조력하도록 되어 있다.
제도의 도입 초기에 학운위의 성격은 의결기관적 요소가 가미된 심의기관이었다. 그 성격을 심의기관이나 의결기관으로 하지 않고 의결기관적 심의기관으로 한 것은 학교운영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함이었으나, 기구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 일선에서 이로 인한 논쟁이 발생하곤 했다. 이에 따라 새로 제정된 초·중등교육법에서는 이러한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학운위의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재심의’ 조항을 삭제하여 순수 심의기구로서 규정하였다. 다만, 학운위의 심의결과를 존중하기 위해 심의결과를 시행하지 않거나, 심의결과와 다르게 시행하고자 할 경우 학교장은 그 사유를 명시하여 관할청과 학운위에 서면으로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전의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었던 ‘재심의’ 조항은 학운위가 형식적으로 심의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의결기능에 준하는 효력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초·중등교육법에서 ‘재심의’ 조항을 삭제한 것은 심의결과에 대해 학교장이 재량권에 따라 심의결과대로 시행하지 않을 수도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학운위와 학교장 간의 관계에서 학교장의 이해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어서 또 다른 논쟁이 되어 왔다.
최근에 학운위에 학교발전기금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심의기능뿐만 아니라 의결기능을 부여한 이후에 학운위 성격을 의결기구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기구의 기능 중에 의결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의결기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학운위의 성격을 의결기구로 규정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학운위의 성격은 제도의 도입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학운위 문제를 운영위원들이 학운위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시각(정형명, 2000)에 비추어 볼 때, 학운위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은 제도의 성패와 직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운영-제자리 찾기 위한 노력 필요 최근의 학운위는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출과 관련하여 본래의 목적대로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운영위원회로 변질되어 가는 모습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조직적으로 특정 위원 구성 비율을 높이려 한다거나, 임기제한으로 운영위원 재선이 불가능한 위원들이 서로 연대하여 학교를 맞바꿔 참여하는 작태들이 교육현장을 정치판으로 타락시키고 있다.
[PAGE BREAK]누가 학운위의 운영위원이 되느냐에 따라 학운위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운영위원은 전체 학부모, 교원 및 지역주민의 대표자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학운위가 대의기구로서의 위상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운위를 통해 다양한 교육구성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학교의 경우 학부모위원으로 활동하려는 의지를 지닌 학부모가 적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희망자 전원이 운영위원으로 선출되는가 하면, 학교 조직의 임원들이 학교측의 권유로 운영위원직을 떠 맏다시피 선출되는 경우도 있다.
교원위원은 대부분 교무회의에서 직선에 의해 선출되고 있으나, 관습에 따라 연령이 많은 교사나 남성 교사가 주로 선출되어 교사 집단의 구성원에 비례한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에 관한 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교원위원 중에서 교직경력 25년 이상인 자가 58.5%를 차지하고 있으며, 보직교사 이상의 직급을 가진 위원이 평교사위원보다 두 배 가까이 많고, 연령별로는 50∼60대 교원위원의 비율이 52.1%에 이른다고 한다(김성열, 2000).
지역위원은 학교장의 추천이나 교원위원, 학부모위원과의 협의 하에 선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과연 어느 정도로 지역의 대표성을 지니게 되는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지역위원이 지역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는가에 대하여는 긍정적인 견해보다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실제로 이들은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회의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고, 심의사항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가지지 못하여 형식적인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경우도 많다.
학운위가 운영되는 모습도 다양하다. 학운위가 학교장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학부모위원이나 지역위원의 과잉 참여로 교원들의 고유영역이나 전문성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학교장이나 교사들이 그 동안의 닫힌 교육통치 체제에서의 독선적인 학교경영의 구습을 극복하지 못하고 학운위를 비효율적인 기구로 인식하여 무시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듯 학운위가 제 위치를 정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까닭 중의 하나는 학교 내·외에서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는 여타의 기구들과의 관계가 모호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학운위와 교무회의, 학부모회, 학생회 등이 각기 다루어져야 할 사항이 그 조직의 특성상 다름에도 불구하고, 학운위가 이들과 별개의 것으로 운영되거나, 상호 긴밀한 연계를 가지지 못함으로써, 학교구성원 모두가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체제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학에서의 학운위는 그 위치가 더욱 모호하다. 한편으로는 사학의 독자적인 교육이념, 그리고 이사회의 기능과 중복되는 문제를 고려해야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등교육의 절반을 책임지는 공교육체제로서의 책무를 고려해야 한다. 이 와중에서 스스로 학교를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사립학교에 배정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제한당하고 있는 셈이다. 사학의 자율성은 확보되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학생의 권리가 침해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하루 빨리 사학의 학운위 정착방안을 모색해야만 할 것이다.
여건-학교 대표 기구로서의 위상 찾자 학운위에서 교원대표들은 자신들의 승진이나 인사에 직결되는 평가권한을 갖고 있는 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볼모로 잡혀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교원대표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학교장이 슬며시 자신의 의도를 흘리면 교사, 학부모, 지역대표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AGE BREAK]우리 나라에 학교라는 조직사회가 자리잡은 이래 뿌리깊은 관료주의적 사고 방식이 학교의 조직문화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어서 자율적 학교운영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학교의 자율은 의사소통을 전제로 하며, 의사소통은 성숙한 토론문화를 전제로 하는데, 우리 학교의 관료주의적 풍토는 토론문화에 익숙치 않다. 교장과 교사가 종래의 관료조직 속에서의 권위적 관계가 유지되는 한 구성원 모두는 민주적 의사결정 체제로 나아가는 동반자적 구도를 지향하는 학운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학교조직문화의 변화가 요청되고 있는 시점이다.
최근에 도입된 학교회계제도는 학운위의 입지를 한층 확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학교재정에 자율을 주게 되니, 의사결정 기구인 학운위의 역할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학교운영 권한의 대부분은 단위학교에 이양되고 있지 못하다. 특히 학사와 인사 등에 관하여는 실질적 권한이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 학교운영에 자율적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의 학운위는 형식적인 기구가 될 수밖에 없으며, 위원들의 관심과 의욕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학운위가 학교 안에서의 위치가 모호하다느니, 운영위원들의 대표성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비판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쩌면 허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학운위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는 학교장과 학운위의 갈등 문제나 학교장의 운영위원에서의 당연직 배제 논란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책임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 즉, 학교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학운위에서 이루어지지만, 학교운영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교장이 혼자 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운위가 학교의 최고 의결기구로서의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책무성을 지녀야 한다. 이는 교직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학습자의 학습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학운위의 운영에 대하여 반성해 볼 수 있는 메카니즘, 즉 학운위에 대한 제도적 평가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점검할 수 없는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스스로의 반성을 통하여 개선해 나가고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질 때만 자율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최근의 학운위는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출과 관련하여 본래의 목적대로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운영위원회로 변질되어 가는 모습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조직적으로 특정위원 구성 비율을 높이려 한다거나, 임기제한으로 운영위원 재선이 불가능한 위원들이 서로 연대하여 학교를 맞바꿔 참여하는 작태들이 교육현장을 정치판으로 타락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