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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머니 되기

박성주 | 서울 잠원초 교사


좋은 어머니 되기란 성인군자 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어느 어머니의 얘기를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어머니도 인간인지라 자기 욕심의 노예가 되기 쉽고, 아이를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도구 내지는 소유물쯤으로 생각하기 쉬워서 여러 가지 우를 범하고 있다. 학교가 대학병에 걸려 있는 현실에서 많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지상의 목표인 듯 전 교육의 과정에서 과잉보호 내지는 과잉충성을 하고 있다. 더구나 고교 3년이 되면 자녀는 부모에게 상전 중에 상전이기 일쑤이고,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온 가족이 아이의 눈치를 살피느라 쩔쩔매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들이 모두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어느 선생님께서 함께 여행을 하면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다. 자신들을 대하는 어머니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머니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고 한다.

자녀가 하겠다고 하면 무엇이든 팍팍 밀어주는 어머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부족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과외 선생님도 모셔오고 먹고 싶은 것도 척척 대령하는 어머니, 더운 날은 에어컨을 팍팍 틀어 공부방을 미리 시원하게 해 놓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적극 밀어준다고 하여 ‘밀모’라고 한다. 과외를 시키는 대신 몸소 뛰어다니며 공부하여 아들을 가르치는 어머니, 때가 되면 따뜻한 영양밥을 지어서 학교로 손수 대령하는 어머니, 아이와 함께 몸소 뛴다고 하여 그런 어머니를 ‘뛰모’라고 한다.

자녀의 공부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별로 관여하지 않고 저녁이면 그저 아이가 공부하도록 놓아두고 잠을 주무시기에 충실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주모’라고 한다. 아이는 시끄러워 방문을 닫아가며 공부하는데 이 채널, 저 채널 TV만 열심히 감상하는 무감각한 어머니를 ‘감모’라고 한다. 밤늦게 공부하는 아들에게 적당한 시간에 간식을 넣어주고 등을 톡톡 두드리며 먹으란 말도 않고 나가 아무 말 없이 거실에 앉아 뜨개질도 하고 독서도 하시는 어머니, 그저 멀리서 지켜봐주는 어머니를 ‘지모’라고 한다. 그런데 덧붙여 아이들은 그 중 지모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본인은 주모라고 하시며 낮 동안에 힘든 일에 시달리는 교사 어머니들은 주모가 되기 십상이라고 말씀하셔서 웃음이 피어났다.

아이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 어머니일까 생각해 본다. 어떤 선생님은 “나는 그 중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도 제일 가깝다면 아마 주모일거야, 아니면 더 하나 만들어서, 방치하고 방관하는 ‘방모’일거야.” 하며 말한다. 어떤 사람은 “난 밀모인 것 같기도 한데 밀어준다고 간섭하고 잔소리를 많이 하니까 난 ‘잔모’일거야” 하고 깔깔거린다. 깔깔거리는 웃음 속에 모두들 자신은 어떤 어머니일까 반성해보는 눈치들이다. 나는 어떤 어머니일까?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한 몫을 하는 사람으로 자라서 ‘나는 우리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하고 말해줄 수 있는 어머니일까?

어머니로서의 나와 교사로서의 나는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입장이 다름을 많이 느낀다. 교사로서의 나는 비교적 아이들이 자기 일에 느린 경우도 잘 기다려줄 줄도 알고 격려해줄 줄도 안다.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 용서하고 다독일 줄도 안다. 친구끼리 싸우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서로에게 잘못을 인식하게 하여 손을 마주 잡게도 한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현 상황에 조급함을 느껴서 아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힘으로 다그칠 때는 “아이들도 인격이 있고 나름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므로 존중해 주세요. 그리고 길게 보고 기다리며 도와주세요. 어머니가 아이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어머니로서의 나는 어떤가? 좋은 교사가 되는 것보다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래서 좋은 어머니는 더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다니기 싫은 학원 공부를 몰래 빼 먹은 적이 있었다. 달리 가서 피해 있을 데가 없어 그 시간에 친구들과 PC방에서 놀다 온 날은 완전히 감정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다.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이야기 했을 때 “다른 아이들은 공부하는데 너는 뭐할 거야?”하고 윽박지르며 등록을 해놓고 지금은 학원비가 아까우니까 열심히 다니라고 한다.

아이는 꽉 붙잡혀 저녁 6시부터 10시 30분까지 강의하는 학원에 가기 싫다며 이제는 거짓말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감정이 북받쳐 “공부도 않고 놀아서 나중에 거지될 거니? 네가 학원 한 번 빠질 때 낭비되는 학원비가 얼마인지 아니? 이제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어떡하자는 거야? PC방 가서 뭐했어? 네가 지금 잘 하는 것이 뭐가 있어?”하며 머리를 쥐어박고 마구 감정을 쏟아낸다.

아이가 울며 자기 방안에 틀어박히면 그때야 비로소 가만히 앉아서 내가 쏟아낸 말들의 비교육성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거지나 되라고? 네가 잘 하는 것이 뭐냐고? 아이의 괴로움보다 돈이 더 아깝다고? 하나하나 되새겨 보면 상처가 되는 말, 비교육적인 말만 꼭꼭 집어 말한 듯하다.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아 아이는 가지 않던 PC방도 가게 되고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게 되었는데도.

그냥 아이를 자기 마음대로 해보도록 놓아두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게 아니구나!’ 자신이 느껴서 스스로를 채찍하며 털고 일어서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다가도 ‘다른 집 아이들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고 열심히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뭔가?’ 하는 조바심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다. 머리와 가슴의 생각이 다르고 욕심이 앞서서 아이를 가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욕심 때문에 잔소리를 해대고 윽박지르고 감정적인 말을 퍼붓는 ‘잔모’ 더하기 ‘윽모’이다.

믿음으로 아이를 지켜봐주는 지모,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아이들의 판단이 옳다. 밀모와 뛰모는 심리적으로 너무 부담이 되어 힘들 것이고 소위 말하는 과잉보호형으로 마마보이를 탄생시키기 알맞다. 주모와 감모는 마음과 상황이야 어떻든 어머니로서 사랑의 표현이 부족한 것 같고 아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 우리가 판단하기에도 밉상이다. 그런데 지모는 공부하는 자녀를 지켜보며 격려를 주고 자신도 밤늦도록 열심히 무엇인가를 이루어가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가 고3이 됐을 때만 지모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생토록 멀리서 방관하듯이 그러면서도 꾸준한 관심으로 자녀를 지켜봐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은 공부하라는 말씀 한 번 하시지 않았어도 호롱불 밝혀 눈썹 태워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가난한 시절의 우리의 부모님은 늘 일에 바쁘셨고 우리의 공부에 조바심을 낼 엄두도 내지 않으셨다. “너 하기 달렸다.” 하시며 믿음을 실어 말씀하실 뿐이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계시며 가끔 쌀자루랑 고춧가루, 참깨 주머니에 사랑을 실어 보내주신다. 우리는 지금 그런 연로하신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솟는다. 예나 지금이나 의도성이 있든 없든 우리들의 부모나 어머니는 지모임이 분명하다.

밥솥을 불 위에 올려놓고 다 되었나 뚜껑을 자꾸 열어보면 설익은 밥이 되고 만다. 자꾸만 뚜껑을 열어 재끼는 성급함이 우리 아이들을 설익게 만든다. 설익은 부모 아래서 설익은 아이가 자라나고 있다. 부모됨은 그 사람의 인간됨과 동일하다. 믿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려주어야 하겠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듯 아이들을 황홀한 웃음으로 보아주어야 겠다.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아이를 생각하는, 무관심 같은 관심으로 늘 지켜봐주는 지모가 되어 보리라. 그러나 언제, 어느 곳에서 조바심난 감정에 발동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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