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결혼합니데이.”
원식이의 결 높은 목소리를 들은 건 그리 오래 되지 않다. 그간 자주 통화를 해서 그런지 경상도 사투리도 정겹게 들렸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들떠 있었다.
“잘했다. 축하한다.”
기쁜 마음으로 맞장구쳤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의 신산했던 지난 날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흔쾌히 그 두 마디로 마음을 대신했다.
사람마다 상대를 대하는 느낌이 다를진대, 원식이는 사뭇 달랐다.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다되도록 지속적으로 전화를 해왔었고, 그때마다 자신의 근황을 전해오는 몇 안 되는 졸업생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결혼 소식은 무엇보다 반갑고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자운영꽃이 햇살에 빛난다. 멀리서 응시하면 보료를 깔아 놓은 듯 신비롭게 보이는 꽃밭. 듬성듬성 자운영꽃이 피어있는 논들을 지나며 5월의 싱그런 햇살을 본다. 결석한 원식이네 집까지 가려면 제법 먼 길을 걸어야 한다. 버스를 타도 되겠지만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하는 마을이라서 아예 처음부터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작정했다.
학교에서 출발한 지 오래지 않아 그리 실하지 않은 자전거 바퀴에 그만 펑크가 나고 말았다. 차마 길가에 두고 갈 수 없어 자전거를 곁에 끼고 천천히 걷는다. 가끔 버스가 스쳐갈라치면 도로는 온통 먼지투성이다.
심동리 길로 들어선다. 다복솔이 깔린 붉은 황톳길이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넉넉하다. 그러나 펑크 난 자전거는 여전히 쿨럭거린다. 길지 않은 두 구릉을 넘어서야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초입의 점방에 닿았다. 몸뻬바지를 강똥하게 차려 입은 주인 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열고 나선다.
“아주머니, 실례합니다만……. 원식이네 집이 어딘가요?”
“원식이 아부지. 누가 찾으요.”
주인 아주머니는 빠르게 나를 위아래로 한 번 인두질하더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점방 안쪽으로 목을 들이밀고 목청을 높인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늙수구레한 어르신 한 분이 가게 입구로 걸어 나온다. 옷차림이 추레하다. 아마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던 듯싶다.
“내가 원식이 애비요.”
“원식이 담임선생입니다.”
나는 얼결에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점방을 나선 원식이 아버지는 불콰해진 얼굴에 성하지 않은 다리를 끌고 앞장서서, 그리 멀지 않은 집으로 나를 안내한다. 슬레이트를 간신히 이고 있는 집은 허름하다. 군데군데 슬레이트가 떨어져 나가 엉성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다. 여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의 어수선한 느낌, 그러니까 에푸수수하여 산만하기 그지없는 집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다만, 집 뒤쪽으로 둘러 있는 깊은 대숲이 햇볕을 따뜻하게 받고 서 있을 뿐이다.
원식이는 방에 누워 있었다. 끙끙거리며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곧장 방안으로 들어간다. 아직 열이 내리지 않았는지 얼굴이 벌겋다. 시골 방안의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약은 먹었니?”
아이는 고개를 흔든다. 나는 우선, 학교에서 준비해 간 몸살감기약을 먹였다. 그러고는 방안에 있는 수건을 쥐고 마당으로 내려와 세숫대야에 찬물을 듬뿍 담아 방안으로 들어왔다. 원식이 아버지는 툇마루에 돌미륵처럼 앉아 있다. 동공이 열려 있다. 아이는 찬물을 이마에 댈 때마다 움찔한다. 아직 아침은커녕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듯하다. 몇 번을, 수건을 번갈아 가며 열을 내리고 있는데 먼저 하교했던 기홍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선생님, 여기…… 밥…….”
기홍이 어머니께서 원식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간단한 식사를 소반에 보내셨다. 흰 밥과 김치, 깍두기에 된장국이 전부지만 정갈하다.
“원식아, 밥 좀 먹자.”
완강히 거부하는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 앉히고 뜨끈한 밥을 된장국에 말았다. 몇 숫갈 뜨다 만다. 조금 더 먹으라고 했지만 단호하다. 모든 것이 소태맛일 것이다. 아이를 다시 눕히고 이마에 찬 수건을 대어 열을 내린다. 기홍이가 대숫대야 물을 부리나케 바꿔온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있자니 어느 결에 아이가 잠에 떨어진다. 오훗녘 해가 금세 기울었다. 편안한 느낌의 얼굴이다. 열도 내린 듯싶고 호흡도 고르다. 좀더 자게 두고는 툇마루로 나와 앉는다. 기홍이는 저만치 앉아 있다.
“어제, 늦게까지 아이들과 축구하고 놀았어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제 잘못인 양 기홍이는 얼굴을 들지 못한다. 그만한 나이에 그럴 법도 한 일인데 일찍 철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같은 말을 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원식이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술이 적당히 취해 툇마루에서 졸고 계시나 했는데 마루에도 없다.
“기홍아, 원식이 아버지 어디 계신지 모르니?”
“아까 제가 들어올 때, 선생님 자전거 끌고 점방 쪽으로 나가시던 걸요?”
기홍이가 원식이 밥을 들고 오면서 원식이 아버지를 보았다며 정황을 말한다. 그 순간 점방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석양이 머물러 있는 에움길에 원식이 아버지가 자전거를 몰고 걸어오고 있다.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는 않는다. 기홍이가 재빠르게 달려가서는 자전거를 받아 온다.
“선생님 자전거가 빵꾸 난 것 같아서 때워 왔지라. 해드릴 것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노을이 자운영꽃처럼 피어나는 마당에서 나는 아직도 붉은 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의 원식이 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올린다. 원식이는 아직도 잠에 빠져 있다. 아마도 푹 자고 나면 내일은 등교할 수 있으리라. 원식이 아버지의 다순 배려를 느끼며 자전거 손잡이를 잡는다. 기홍이가 동구밖까지 따라 나온다. 나는 그에게 원식이를 부탁하고 길을 잡아 나선다.
중천에 반달이 걸렸다. 자전거를 타고 달빛을 헤쳐 서둘러 페달을 밟는다. 마음 한켠이 흐뭇하고 따뜻해진다.
그후로 군대에서 휴가 나와 우리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원식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내가 “이제 고아구나.” 했더니 계면쩍은 웃음만 흘리던 녀석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누이가 있는 부산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울산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길 들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긴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울산에서 만난 여자인 듯했다. 제법 나이가 들어 하는 결혼이니 만큼, 행복하고 또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은 아주 사소한 데서 오는 것, 그것을 행복으로 아는 지혜로움도 알았으면 좋겠다. 고향집, 5월 들판에 피어 있던 자운영꽃처럼 원식이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