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탄생
필립 아리에스 지음/ 새물결
"나는 아직 젖먹이였던 아이 두세 명을 잃었지. 회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슬프지는 않아." 요즘 이런 말을 하는 부모가 있다면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쯤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1533~1592)가 거리낌없이 말할 정도로 16세기 유럽, 적어도 프랑스에서 이런 생각은 별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몽테뉴처럼 "아이들에게는 정신 활동도, 또 뚜렷이 구분되는 신체 형상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야 출간됐지만,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역사학과 지리학, 인구학을 전공한 저자 아리에스의 대표적인 저작인 '아동의 탄생'이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은 1973년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아이 교육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 극성 부모 현상이 보편화되고 어린이에 대한 '신화'들이 기승을 부릴 무렵이었다.
이런 때에 아리에스는 '아동 개념이 탄생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불과 300년 전만 해도 유럽은 아동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조그만 원숭이 같은 장난감으로 보기도 했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속담까지 들추지 않더라도 자식 사랑은 본능이라는 것이 상식인 사회에서 그의 이러한 주장은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중세는 교육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젖을 뗀 아이들은 곧장 어른의 자연스러운 동반자가 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7세기말부터 상황이 바뀐다. 종교개혁가와 도덕론자들에 힘입어 가족 내에서 아동의 독자성과 모성애에 대한 자각이 출현한 것이다. 아동은 성인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더불어 도제가 아닌 '학생'으로서 아이를 가르치는 학교 교육이 확립됐다. 오랜 시간 구속해서 가르치는 학교 교육은 아이들을 도덕적으로 보호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의 결과였다.
이런 의식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아리에스는 숱한 그림들에 나타난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10세기 화가들은 어린이를 덩치 작은 사람으로만 그릴 줄 알았다. 하지만 17세기가 되면 혼자 있는 아이의 초상화 수가 많아지고 보편화한다. 가족 초상화도 이때쯤 아이들을 중심으로 편성되기 시작한다.
아이를 중심으로 하는 그림은 어머니가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있고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루벤스의 가족 초상화, 아이들이 서로 입맞추고 포옹하면서 장난과 애무로 어른들에게 활기를 주고 있는 장면을 담은 반 다이크 등의 가족 초상화에서 나타난다. 나아가 그는 18세기에 영아사망률이 감소하면서 인구폭등이 일어난 것은 의료 및 위생의 발달이 아니라 바로 '영아살해'로 대표되는 중세적 '아동관'이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사회문화적 변화에서 감정과 심리의 변화를 도출해낸다는 점에서 아리에스의 시선은 다분히 유물론적이다. 수도원의 규율에서 벗어나 잠시 숨통이 트였던 18세기 자유주의적 교육관이 19세기 이후 어떻게 병영식 교육체제로 침몰해버렸는지, 프랑스와 영국의 사례를 들어 보여주는 책의 후반부는 특히 그러하다. 초등과 중등교육의 분리를 아동기-청소년기 개념이 갈라지던 시기와 연결시킨 동시에 가난한 하층민과 부르주아지의 교육 분기점으로 지목한 것도 눈길을 끈다.
철저히 프랑스 중심으로 되어 있어 한국이나 중국 등 동양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교육은 결국 사회문화적 전통과 같이 가는 것이고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력 있는 접근 속에서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