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먹거리와 시차로 지친 몸을 달래며 방문을 나선다. 이제 일주일 후면 우리나라 일상으로 회귀한다. 그동안 이곳 뉴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의문을 던진다. 체크아웃하고 버스에 다가서니 없는 듯 있는 듯 전형적인 미국 남부 스타일의 무표정한 사나이가 짐 가방을 실어 준다.
오전 7시 30분 전용 버스는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을 향해 출발한다. 출발 전 지도를 보니 얼마 되지 않는 거리 같았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라고 한다. 허드슨 강을 지나 왕복 8차선과 6차선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 눈에 들어오는 나무는 대부분 활엽수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단풍이 너무 예뻐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정오경 보스턴 시내에 진입한다. 보스턴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라톤과 고풍스러운 역사이다.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에서 서윤복 선수가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으며, 2013년 4월 15일 마라톤에서는 결승선 앞두고 두 개의 폭탄이 터져 관중들과 참가자 및 일반 시민들을 다치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 도시는 매사추세츠 주도로 영국 청교도들이 혁명 당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다. 주요 생산물은 옥수수, 감자, 크랜베리, 칠면조다.
교육에 있어 보스턴에는 67개 이상의 대학이 있으며 젊은 층이 많아 평균 나이가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제일 낮은 24살이라고 한다. 주목할 점은 미국 최초의 고등학교가 설립돼 12명의 목사가 9명의 학생을 가르친 것이 하버드 대학교의 전신이라고 한다.
이처럼 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고풍스럽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가장 미국적인 도시이다. 하지만 역사가 오랜 만큼 계획도시가 아니어서 도로사정은 별로이다.
점심 전 MIT 공대 옆 박물관에 들어간다. 미국 3억5000만 인구 중 공학의 천재들이 모여 연구 발명한 다양한 기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 전시실은 과학기술을 집적한 다양한 발명품, 나아가 첨단 하이테크 나노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시킨 다양한 전시물이 왜 미국이 세계의 패권 국가로 군림하는지 힘의 근원을 알게 해준다.
MIT 공대는 보스턴 시내 여러 건물과 도로를 끼고 자라 잡고 있다. 이 대학에는 세계의 유명한 석학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 박사가 재직하고 있다. MIT 공대를 끼고 두어 블록 걸어본다. 젊은이들의 모습과 여름 패션들이 대서양에 접한 뉴잉글랜드 해안과 찰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상큼함으로 묻어난다.
오후 1시를 넘긴 시각 점심을 먹으러 퀸시마켓으로 간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그 지역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다. 마켓은 푸드 코터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과 인파로 넘쳐난다. 이곳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랍스트롤과 클램차우드를 기다린 끝에 받아 2층으로 올라간다. 음식을 먹으며 바닷가재를 얼마나 잡았으면 이런 수요를 맞출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맛은 괜찮다.
시장에 오면 눈이 즐거워진다. 점심을 먹은 뒤 퀸시가든을 걸어본다. 직선으로 300여 미터 될까 하는 거리에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 엑세서리를 파는 가게 등 남대문 시장을 연상시킨다. 바쁜듯하면서 여유롭게 상수리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흡사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칼 요한의 거리를 닮은 인상을 불러온다. 밤이 되면 이곳은 현란한 조명 아래 불빛에 가려진 슬픔과 기쁨들이 넘쳐나는 젊음의 거리가 될 것이다.
눈이 즐거우면 시간은 빨리 흐른다. 오후 3시 검은 선글라스에 정장 차림 앳된 소년이 빌리조앨의 피아노맨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뛰어난 가창력이 가슴을 파고든다. 하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여운을 길게 남기며 이동한다. 멀리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로 솟아난 기둥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한 범선과 요트의 돛대라 한다. 항구와 가까워 바닷냄새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보스턴 과학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찰스 강을 바라보며 있다. 우리나라 여느 과학관과 비슷하지만, 규모와 체험 및 편의시설이 놀랍다. 아쉬운 점은 영어 해설에 모르는 단어가 많아 이해하기에 애로가 많다. 진작 영어공부를 많이 해 둘 것을 후회한다. 실내 전시물 마지막 코스에서 찰스 강을 바라보며 강의 생태를 보고 휴식을 취한다. 무릎이 팍팍하다. 잠시의 휴식을 끝으로 야외 전시장으로 나온다.
오후 6시 모든 일정을 끝내고 다시 차에 오른다. 찰스 강을 따라 십 여분 정도 지나 도착한 곳은 한식당이다. 이 식당도 중국 사람으로 넘쳐난다. 특유의 억양 저돌적인 모습과 옷차림에서 금방 중국인임을 알아차린다. 미소 된장국에 쌀밥을 말아먹는다. 저녁 식사를 뒤로 오후 7시경 보스턴 인근 숙소에 도착한다.
미국 역사의 출발점인 고풍스러운 도시 보스턴에서 짧고도 긴 하루 일정. 아직도 MIT 공대의 창의성 교육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의 열정과 저력, 퀸시마켓의 웅성거리는 사람 냄새가 추억으로 각인된다. 오늘 여기서 하루를 보내고 내일은 하버드 대학으로 간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 교수가 있는 곳이라 하니 궁금증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