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장마로 유월의 태양은 도심을 달구고 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노인 요양병원 특유의 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삶과 죽음이란 양날의 검을 가진 시간은 환자와 방문객의 발소리에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요양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온기 없이 흔들리는 촛불 같은 삶의 모습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의미 없이 중얼거리는 할머니, 서성거리기만 하는 할아버지, 초점 없는 시선으로 천정만 응시한 채 코로 연결된 호스로 음식을 받는 어르신 등 형언하기 어려운 모습이 낯선 거울처럼 비친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 더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뜻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게 우리네 인생이다.
독백을 흔들며 비슷한 상황 속의 장모님께로 시선을 돌린다. 한 달여 만에 방문이다. 반가운 기색은 흥건하게 젖은 눈에서 전해지지만 입술만 파르르 떨린다. 연명의 대가로 말도 못 하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다. 지금 당장 나 자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떠할까?
뇌졸중 발병 후 요양병원에 머무른 기간이 사 년을 넘어서고 있다. 그동안 근육은 다 빠지고 반투명해진 살갗은 뼈에 달라붙었다. 뇌졸중은 몸의 우측과 언어를 관장하고 있는 대뇌 피질 좌뇌의 언어광장 브로카 영역을 손상해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영원히 빼앗아 고립시켰다. ‘언어 없는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살아있다고 해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신경외과 의사 <폴>의 말이 되살아나 가슴을 헤집는다.
삶과 죽음!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리가 0에 가까워지는 죽음이란 점근선을 향해 나아간다. 이 기간에 모든 사람은 사연은 다르지만 파란만장한 고개를 무수히 넘나든다. 이런 유한의 과정에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며 죽음을 뒤좇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려고 한 사람이 <폴>이었다.
고교 시절 그 당시 유행한 산울림의 ‘청춘’이란 노래를 유달리 애창한 동창생이 있었다. 소풍 가는 날이면 교련복에 커다란 카세트 라디오를 어깨에 메고 노래를 따라 부른 그는 보리가 익어 갈 무렵 억지로 세상을 달리했다. 장례식 날 그의 아버지는 차일 아래서 뜨물 같은 막걸리를 목으로 털어 부으며 낡은 검정 고무신 한 짝으로 땅을 치며 피를 토하는 절규가 메아리 쳤다. 지금도 간혹 묻는다. 그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을까?
서른여섯 해 <폴>의 삶은 짧지만 자신과 가족에 대한 뜨거운 진행형의 숨결이었다. 그는 삶에 있어 고통을 피해 생존을 위한 분투가 없는 것은 줄무늬 없는 호랑이를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폴>은 암 진단 후 다들 포기할 줄 알았지만, 암이 안정세에 들어가자 신경외과 레지던트로서 하루 열여섯 시간의 근무를 시작한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를 외치며 죽음은 단 한 번 일이지만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고뇌에 빠지는 일은 생존 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레지던트로서 뜨거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폴>의 숨결이 바람으로 남겨준 것은 무엇일까? 신경외과 의사이며 뇌 과학자로 장밋빛 앞날이 예고된 지점에서 암에 점령당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만든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소중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폴>은 의대생 시절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한다. 이 의지를 출발점으로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품고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라 했다. 정말 의사이기 전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사람은 대개 어려움에 부닥칠 때 두 가지 형태를 보인다. 제일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를 탓하며 증오하다 스스로 자멸해 버리는 경우와 <폴>의 부부와 그를 둘러싼 가족처럼 모두 하나가 돼 예비 된 시간이지만 값지게 삶을 디자인하며 응원하고 마음을 모아 나아가는 경우다. 죽음은 궁극적으로 본인에게 해당하는지만 관계성으로 보면 부부와 가족으로 얽혀 있다.
지금 우리는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하지만 관계의 사랑을 모르는 우리는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증오의 조각도로 상처를 깊게 새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모두 내 곁의 소중함을 망각한 정신을 놓은 형태이다. 살아간다는 것, 온전한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미움과 증오보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더 심어야 한다.
우리는 공기처럼 가까이 내 주변에 있는 것에 사랑하는 일이 인색하다. 쉽고 편안한 길을 선택해 스스로 멸망케 하며 만남이란 소중한 설렘도 사소한 이익 앞에서 스러지는 현실이다. 모두 자신과 자본의 가치만 중요시하는 이 시점에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 소중함을 이 책은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