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소멸기간이 임박한 영화 할인쿠폰이 하나 있어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그전부터 눈여겨보았던 ‘남한산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남한산성은 황동혁 감독의 수작으로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간의 항전기록을 담은 영화이다. 영상이 정갈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편집이 대번 눈길을 사로잡았다. 러닝 타임 140분 동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제1장 두 신하
영화의 서두는 주화파인 최명길과 척화파인 김상헌의 논쟁으로 시작된다. 청나라의 총사령관 용골대는 대명 제국과의 군신관계를 끊는다면 군사를 물리겠다고 한다. 이에 김상헌은 명분과 의리상 그렇게는 못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된다.
제2장 오직 싸움이 있을 뿐이다
김상헌이 인조께 아뢴다. 전하, 지금 군사들은 남한산성의 성채에서 매서운 북풍에 얼어 죽고 있사옵니다. 손은 터지고 발은 동상으로 썩어 들어가 창과 활시위를 당길 수가 없나이다. 하루 빨리 사대부들의 의관을 걷어 병사들에게 입히심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
이에 영의정 김류는 이렇게 말한다. 김상헌의 말은 지극히 옳으나 이는 불가한 줄로 아옵니다. 만약 사대부의 의관을 걷어 병사들에게 준다면 이는 사대부의 권위를 스스로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조선이란 나라는 없어지게 되옵니다. 하오니 김상헌의 말은 심히 망령되어 받아들일 수가 없나이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인데도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대부들의 사고방식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제3장 서날쇠의 조총
칼은 무디고 창은 구부러졌다. 조총의 총신도 휘어져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이에 서날쇠는 김상헌에게 고장난 무기들을 수거해 자신의 대장간에서 벼를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김상헌은 기꺼이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무기들을 수리해준다. 무기를 수리한 후 첫 전투에서 우리 군은 대승을 거두게 된다. 현실을 외면한 채 온갖 말의 잔치만을 일삼던 관리자들에 대한 일침이었다.
제4장 나루터에서 태어난 아이
적의 길잡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상헌은 나루터에서 늙은 사공을 죽인다. 그 늙은 사공에게는 어린 손녀가 있었다.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김상헌은 그걸 알면서도 오직 나라를 위해 늙은 사공을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그 늙은 사공의 손녀는 남한산성으로 찾아들게 되고 그 어린아이가 사공의 딸임을 간파한 김상헌은 그 소녀를 거두어 자신의 딸처럼 보살핀다. 어린 소녀에게 떡국을 먹이기 위해 자신은 배가 부르다며 흰 떡국을 소녀에게 양보하는 김상헌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제5장 가마니와 말고기
성채에서 얼어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해 가마니를 나누어주면 좋겠다는 서날쇠의 청에 말에게 먹일 사료가 부족하다고 반대하는 대신들을 보며 요즘 소위 말하는 “무엇이 중한디?”가 생각났다. 이에 김상헌은 말한다. 말은 없어도 싸울 수가 있지만 군사가 없으면 싸울 수 없다며 백성들에게서 가마니를 거두어 군사들에게 보온용으로 나누어주었다.
제6장 삼전도의 칸
삼전도의 칸은 청나라 황제인 청 태종을 가리킨다. 우리의 열 배가 넘는 13만 대군을 거느린 청 태종은 송파에 진을 치고 남한산성을 에워싼 채 느긋하게 고사 작전을 펼친다. 잘 훈련된 군대와 조직, 그리고 사기가 충천한 군대의 수장으로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최명길은 청 진영을 방문해 그들의 군비와 위엄을 사실대로 보고하며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사대부들은 최명길을 오히려 적의 첩자로 몰아 처단하려 한다. 진실을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제7장 북문 전투
서날쇠의 건의를 받아들인 김상헌이 그동안 무디고 고장난 병장기들을 모두 벼리고 수리한 뒤 새롭게 군을 정비한 뒤 무당에게 택일을 받는다. 그리고 나서 치른 첫 전투가 바로 북문 전투였다. 결과는 당연히 우리 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관리들이 따뜻한 방안에 앉아서 입으로만 싸울 때 서날쇠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은 현장에서 병졸로 경험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 위정자는 반드시 현실을 살피고 현장 경험을 해봐야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제8장 적의 아가리
새해를 맞아 적 진영을 살펴보고자 각종 예물을 들고 청 태조를 찾아 하례를 올린다. 그러자 청 태종은 너희는 지금 식량이 떨어져 말까지 잡아먹는다고 들었다. 너희가 가져온 소와 양식은 다시 가져가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거라.
나라에 힘이 없으면 사신으로 간 사람들이 이렇듯 능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는 것이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최명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제9장 보름달이 차는 날
인조가 주화파인 최명길의 청을 받아들여 항복 쪽으로 기울며 김상헌에게 항복문서 초안을 부탁하자 김상헌은 이렇게 말하며 오열한다. 전하, 오랑캐에게 삶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겠나이다. 이에 최명길은 조선팔도에 어찌 문장가가 김상헌만 있겠나이까. 항복문서는 제가 기초하겠사오니 부디 김상헌의 존명은 지켜주소서.
항복문서 쓰기를 거부하는 김상헌이나 스스로 항복문서 쓰기를 자청하는 최명길이나 어찌 이 나라의 충신이 아니랴. 항복문서를 찢는 사람이 있으면 그 조각을 주워 다시 맞추는 사람도 있어야하는 법.
제10장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청 태종이 남한산성을 둘러싸고 항복을 권유하자 인조가 신하들 앞에서 선언한다. 나는 살고자 한다. 이 말을 들은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구차하게 삶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죽겠나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김상헌이 단호함이었다. 하지만 최명길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고 항변한다. 최명길에게 있어 실리가 중요한 것이지 형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가 어려서부터 양명학을 수학한 때문이었다.
마지막 장 삶의 길
김상헌 : 자네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려고 하는가?
최명길 : 살아야만 임금과 백성이 함께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 아닙니까.
김상헌 : 틀렸네. 새로운 세상이란 이 세상 모든 낡은 것이 사라진 뒤에야 열린다네. 심지어 우리가 세운 임금마저도 사라져야 되네.
마지막 김상헌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와 김상헌의 생각이 너무나도 같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