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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웅숭깊은 비평의 그늘 속에서 느끼는 시의 따뜻함

김경복의 비평집 『연민의 시학』

시절은 동지를 지나고 있습니다.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어둠이 휘몰아 오는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에는 눈썹처럼 고운 달과 그 옆으로 별무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칠흑 같은 동짓날 밤입니다. 깊고 깊은 어둠, 그 어둠을 거두어 갈 태양의 빛은 내일 아침이면 더 아름답게 떠오를 것입니다. 이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 간절하겠지요. 빛은 어둠을 짝하여 가장 환하게 타오를 것입니다. 지옥처럼 깊은 어둠이 내린 동짓날, 긴긴 밤을 읽은 책이 있습니다. 김경복의 네 번째 평론집 연민의 시학입니다.

 

저 역시 평론에 관심을 갖고 있기에 최근 평론집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평론은 작가의 세계를 더 깊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작품이 가지는 새로운 지평을 찾아내는 발견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평론집을 읽으면 원석이 장인의 손을 거쳐 다시 아름다운 보석으로 재탄생되듯 작가가 쓴 작품에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는 듯 느껴집니다. 연민의 시학은 전체적으로 영혼과 한의 미학, 노년의 삶과 죽음, 의식의 점등과 동일성, 여성의 자의식과 치유 등의 네 가지 테마로 시인들의 시를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시인과 작품의 세계를 동시 일컬을 수 있는 시의 태동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아직도 자신은 비평가보다 시인으로 한 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비평이 작품에 대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심중에 일어나는 감성적 반응에 더 기대어 전개된다는 말을 통해 시인의 의식에 나의 의식을 동조시킨 비평, 창조적 비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참 멋진 표현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시가 비평을 통해 새롭게 빛을 더해가는 과정이라는 저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

 

독자 자신의 경험이나 지향과 맞물려 섞여들면서 시는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존재의 본질을 변화시킨다.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다. 그 새로운 세계의 접면에 영혼의 생살이 닿게 되었을 때 생기는 어질머리가 바로 여러 날을 혼미하게, 그러면서 달콤하게 보내는 까닭이 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고통과 쾌락의 초기 증상은 그 호르몬의 변화는 같고 그 중상이 비슷하므로 그것이 고통인지 쾌락인지 잘 모르게 된다고 하는데 바로 이 경우가 거기에 딱 들어맞는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한 시가 내게 기쁨인지 고통인지 그 시작은 어질머리로 출발해 여러 날들을 숙고하는 동안 마음의 평정을 주는 기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고통의 죽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기쁨이든 고통이든 일상 속의 무미건조한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고통이다. 좋은 시는 나의 존재성을 뒤흔들어 각성케 하는 회초리 같은 것이다. p16

 

밤이 깊고 바람은 차갑습니다. 깊은 산 속에서 만난 찬샘 같은 한 권의 평론집을 동지팥죽을 먹듯 기쁘게 읽으며 올해의 제 어둠을 갈무리합니다. 내일은 병아리 눈물보다 더 작지만 분명히 낮이 길어질 것입니다. 태양은 조금씩 더 이 땅에 머물다 갈 것입니다. 이렇게 밝음이 어둠을 몰아내듯 새해에는 우리 주변의 삶이 더 행복하고 밝아졌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웅숭깊은 비평의 그늘 속에서 따뜻한 시의 힘을 찾아내는 비평가처럼, 저도 어둠이 빛의 다른 이름임을 기억하며 더 성실하게 새해를 맞이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연민의 시학, 김경복 지음, 시인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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