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을 피워 올린 마당에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가 맛나게 익어가고 모처럼 모인 가족들의 목소리는 ‘애애~~앵’, ‘또옹~~땅 동땅’ 해금과 가야금의 정다운 합주 같습니다. 오월의 들판엔 쫑대 올라온 마늘밭과 그 옆으로 양파밭이 짙푸르고 싱그러운 물결이 넘실거리는 보리밭이 아름답습니다. 뒷산을 하얗게 채색한 아까시 꽃향기의 산책길은 마을 앞에서 주춤거립니다. 오월의 축복 아래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 조카들을 앞날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축원하였고 어른들의 건강을 기원하였습니다. 만일 이들에게 안타까운 일이 생긴다면 마음을 다해 슬퍼하며 제가 할 도리를 다하겠지요. 그리스의 작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을 읽으며 안티고네의 행동은 과연 옳은 일인가를 계속 생각하였습니다.
오디푸스왕의 딸 안티고네는 테베를 공격하다 전쟁터에서 죽은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하여 매장을 금지한 외숙부인 크레온 왕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합니다. 오빠의 시체에 모래를 뿌려 장례의식을 행하였다가 잡히자 죽은 가족의 매장은 신들이 부여한 가족으로서의 신성한 의무를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크레온 왕은 조국을 배반한 폴리네이케스를 엄벌하는 강력한 처벌을 통해서 본보기를 세움으로써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레온은 여기서 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인 윤리인 자연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위와 합리적인 질서를 거부하는 안티고네를 동굴 속 생매장을 명령하게 됩니다. ‘크레온’, ‘안티고네’ 두 인물의 갈등이 정말 대단합니다.^^
‘안티고네’라는 매력적인 인물은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에 의해 늘 새롭게 재탄생되었습니다. 강태경교수가 무대 공연을 위해 번역한 그리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봄비처럼 촉촉하게 제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안티고네의 숭고한 매력은 많은 시인, 화가, 철학자에 의해 매력적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읽은 후 검색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철학자 헤겔과 라캉은 크레온과 안티고네 사이의 비극적 갈등을 ‘인간의 법’과 ‘신의 법’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두 가지 윤리 사이의 딜레마에 비추어 해석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헤겔은 ‘국가의 윤리’와 ‘친족의 윤리’ 사이의 갈등으로, 라캉은 ‘선의 윤리’와 ‘욕망의 윤리’ 사이의 대립으로 파악합니다. 헤겔의 해석에서 형제간의 본능적 사랑을 따르는 안티고네의 행위는 공동체의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고, 국가의 법 또는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크레온에게 정당성이 부여한다고 주장합니다.(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늘 어렵습니다.)
연휴의 끝자락에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던 날 먼 곳으로 떠나신 친정아버지의 산소엘 찾았습니다. 젊은 아버지를 보내며 제 마음을 하얗게 찔렀던 찔레가시는 지금은 많이 무디어져서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드리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두런두런 제가 사는 이야기도 하고 공부가 어렵다고 글쓰기도 잘 되지 않는다고 불평도 하였습니다. 노란 고들빼기 꽃이 불쑥불쑥 솟아오는 봉분 아래에 술 한 잔 드리고 내려오면서 그녀를 생각하였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도리로 안티고네는 서슬 퍼런 크레온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신 위로 흙을 뿌려 먼 길을 배웅하였던 것이 않을까요? 국가법과 자연법의 충돌이라고 말하지만 그냥 진심이 담기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요?
오월의 긴 연휴가 끝났습니다. 창문을 열고 자판을 두드리니 아까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와서는 제 코끝에 매달립니다. 아, 향기에 취해버리니 천금에 값하는 봄밤이 됩니다.^^ 저처럼 달콤한 아까시 꽃향기에 취하는 봄날 되십시오.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지음, 강태경 번역, 새문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