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은 시대별로 교과서에서 어떻게 불렸을까. 우윤 전주역사박물관장은 갑오농민혁명 110주년을 맞아 1895년부터 최근까지 발행된 국사교과서에서 '동학농민전쟁' 관련 부분을 분석, 발표했다.
우관장은 교과서의 기술 형식을 시기별로 ▲1895년 이후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이후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눴다. 그는 1895년 최초로 발간된 초등 국사교과서인 '조선역사'에서부터 1960년대 문광부 검정 교과서는 "'동학란'으로 표기하던 시대"라며 갑오농민전쟁을 "왕조질서에 반기를 들거나 기존의 체제 질서를 어지럽힌 비적의 소요쯤으로 인식, 근대 사회로의 원동력이라는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시기"라고 지적했다.
1970년 판 인문계 고교 교과서 '국사'를 시작으로 한 1970년대 교과서에서는 '동학란'에서 '동학혁명'으로 표기가 격상됐다. 그러나 우 관장은 "'동학란'이란 표기가 보수적 학계의 입김이 작용, 학문 내적 요인으로 역사용어가 정해진 시기"라면 70년대는 "학문적 성과가 '혁명'으로 인정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음에도 학문 외적 요인으로 역사 용어가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1979년 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제외하고는 '농민'이라는 용어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우 관장은 "갑오농민전쟁의 주체 세력으로서 '농민'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동학교단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는 것은 동학의 사상과 활동을 과도하게 평가하려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한 '국적 있는 교육'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이후는 "''반란'도 아니고 '혁명'도 아닌 중간적 용어인 '동학운동'이라는 용어를 취한 시기"라고 평했다. 그는 5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사용되기 시작한 "'운동'이라는 용어는 모든 인간 활동에 쓰일 수 있는 것으로 역사의 엄밀하고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없다"며 "이는 갑오농민전쟁을 무력화시키고 그에 대한 열정을 박제화 시키는 표백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우 관장은 또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농민'이라는 용어가 강조됐다"며 "학문적 성과가 축적됨에 따라 '동학란'이 '동학농민혁명운동'으로 불리는 등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전환돼 갔다"고 평했다.